추석을 지냈다. 조금은 쓸쓸하게..

부모님은 이미 20년도 전에 천국 가시고..

아내는 홀로 남으신 장모님 문병 가고..

멀리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며, 세월을 느꼈다.

아버지가 생각났다. 어머니와 더 가까이 지냈다고 생각했었는데..

별세하신 후로는 아버지가 더 생각나니.. 왜일까?

생전에 아버지가 마지막으로 거처하시던 집,

늘 앉아계시던 거실 벽에는 크지 않은 액자가 하나 걸려 있었다.

세로쓰기로, 두 줄로 된 문장은 성경구절이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시18:1)

아버지는 이 말씀이 참 좋다고 하셨다.

온갖 풍상으로 점철된 자신의 인생을 다윗은 잠잠히 뒤돌아보면서 이 고백을 남겼는데..

1916년생이신 아버지도 어느 날 이 말씀을 붙들고 과거를 여행하신 것 같다.

일제강점기의 어두웠던 시절, 그러면서도 아련한 고향마을을 돌아보셨을 것이다.

청운의 꿈을 키우며 농업중학교를 다니시고, 사범학교를 다니시던 시절로도 가보셨을 것이다.

해방과 죽고 죽이던 한국전쟁과 그 와중에 휩쓸렸던 유격전도 떠올리셨을 것이다.

단신으로 피신을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이별과 그리움과 외로움을 기억하셨을 것이다.

혹 북녘에 남아 살아있을지도 모를 가족을 생각하며 ‘이산가족찾기’를 애써 외면하시던..

그 무거워보이던 뒷모습은 내가 ‘아버지’를 세월과 함께, 역사와 함께 느낄 수 있었던

첫 경험이었다.

아버지는 다윗 못지않은 풍상의 세월을 뒤돌아보셨던 것 같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고 인자하신 동행을 발견하셨을 것이다.

그것은 기적이라고 느끼며.. 너무도 절절한 사랑이었다고 깨달으며..

그래서 이 말씀을 되뇌면서 감동을 받으신 것 같다.

“나의 힘이신 주님,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주님은 나의 반석, 나의 요새, 나를 건지시는 분,

나의 하나님은 내가 피할 바위, 나의 방패,

나의 구원의 뿔, 나의 산성이십니다.”(1,2; 새번역)

아버지가 천국가신 후 묘비를 만들 때

나는 석공에게 주저 없이 ‘시18:1’ 말씀을 내밀었다.

아버지의 신앙을 존경하며, 아버지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아버지가 사랑한 이 말씀을 나도 사랑했기 때문이다.

조금은 쓸쓸한 추석을 지내며..

이 말씀이 내게 다시 한 번 감동을 주고, 그리움을 준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새 힘을 준다.

“아, 주님, 진실로 주님은 내 등불을 밝히십니다.

주 나의 하나님은 나의 어둠을 밝히십니다.

참으로 주님께서 나와 함께 계셔서 도와주시면,

나는 날쌔게 내달려서 적군도 뒤쫓을 수 있으며,

높은 성벽이라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28-29)

당신에게도 하나님은 힘이신가?

당신도 여호와를 사랑하는가?

잊지 말자. 당신과 내 곁에는 늘 우리 주님이 계신다.

아니, 그분만이 늘 계신다. 오직 주님만이!

“주님은 살아 계신다!

나의 반석이신 주님을 찬양하여라.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높여라.”(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