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은 늘 ‘길었다’는 느낌이다.

그래도 지난겨울은 유독 길었다.

갑자기 찾아온 아내의 아픔.. 무릎에 농이 차고.. 염증이 혈액으로 감염되어..

40일이 넘도록 병원생활을 했다.

감사하게도 퇴원은 했지만, 아직도 부어있는 왼쪽 무릎을 굽히느라고..

그 아픔을 참아내며.. 재활의 의지를 끌어올리려고..

매일 희망과 낙망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그래도 봄이다.

한 없이 느린 듯.. 다가오기 귀찮은 듯.. 애를 태우다가도,

그러나, 어느 날 초여름 턱밑까지 뛰어와 있는 듯했던..

그 봄이 분명 오고 있으렷다.

주역의 64괘 가운데 세 번째가 둔(屯)괘란다.

첫 번째가 하늘을 뜻하는 건(乾)괘이고,

두 번째는 땅을 가리키는 곤(坤)괘다.

즉 천지가 이루어진 뒤를 둔(屯)괘가 이은 것인데,

屯(둔)은 땅속의 식물이 새싹을 틔워 지표면으로 솟아나오는 것을 형상한 글자다.

따라서 屯(둔)은 만물의 시작을 의미한다.

屯밑에 날 일(日)자를 붙이면 식물이 햇볕을 받아 싹이 나옴을 의미하는데,

이것이 변형되어 봄을 뜻하는 春(춘)자가 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봄의 으뜸 상징은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임을 강조한 말이다.

우리말의 '봄'도 새싹을 뜻하는 '움'의 변형이라는 설이 있는데,

그렇다면 이 역시 새싹이 나오는 계절임을 표현한 말이다.

어쨌든 봄은 새 생명, 새 은혜의 계절이다.

아무리 단단하게 얼었던 땅도 새싹으로 뚫어내고,

다 죽은 나무 같던 그 가지에 새 움으로 생명의 쪽지를 달아내는,

측량할 수 없는 에너지, 부활의 생명력을 희망케 하는,

그런 ‘봄(春)’의 카이로스 아닌가!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게 오는 것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겨울의 고비를 넘으면서,

“주님, 주의 길을 나에게 보여 주시고,

주께서 가시는 그 길을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은 내 구원의 하나님이시니,

주의 진리로 나를 지도하시고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종일 주님만을 기다립니다.”(시25:4-5)

젊잖게 기도하다가도.. 이렇게 울부짖기도 하는 것 아닐까.

“주님, 나를 돌아다보시고,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나는 외롭고 괴롭습니다.

원수가 내 마음에 고통을 더하니,

나를 이 아픔에서 건져 주십시오.

……

내가 피신할 곳은 오직 주님뿐입니다.”(16-20)

그러나 이렇게 부르짖던 다윗도,

반드시 주님의 응답의 은총은 온다고 믿었다. 마치 봄처럼..!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은 수치를 당할 리 없고..”(3)

“주님은 선하시고 올바르셔서,

죄인들이 돌이키고 걸어가야 할 올바른 길을 가르쳐 주신다.

겸손한 사람을 공의로 인도하시며,

겸비한 사람에게는 당신의 뜻을 가르쳐 주신다.”(8-9)

그렇다. 우리 주님은 그런 분이다.

아직도 겨울의 기억으로 힘겨워하는 당신과 나를,

내 아내를, 우리 ‘희망 가족’들을..

봄의 에너지, 부활의 은혜로 채우시는 분이다.

우리 안에 봄을 만드시는 분이다.

그런 은혜를 받은 사람은 봄과 같은 사람으로 살지 않을까.

다윗처럼 “겸손하고, 겸비한 사람”의 길을 가지 않을까.

“봄과 같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본다.

그는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 게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우선 그 안에 해야 할 바를

최선의 성실로 수행하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새롭히며 나아가는 사람이다.”

이해인, <봄과 같은 사람> 중에서 -

봄이다.

부활의 카이로스를 살자.

봄과 같은 사람으로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