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올림픽에서 가장 중증의 장애를 가진 선수가 출전하는 종목이 보치아다. 뇌성마비 1·2급의 장애인만 참가할 수 있는 보치아는 장애 정도에 따라 BC1, BC2, BC3 등 3개의 세부 종목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서도 BC3 종목은 장애가 가장 심한 경우로, 선수가 손을 사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을 굴릴 때 경사로인 ‘홈통’을 이용한다.
경기자는 표적구가 놓인 위치에 따라 홈통의 방향과 각도 등을 조절해서 공을 굴려야 하는데, 이때 비장애인인 보조자의 도움을 받는다. 선수와 보조자가 경기에 함께 출전하기 때문에 이 둘 간의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오랜 기간 선수의 손과 발이 되어 호흡을 맞춰야 하는 BC3 종목의 특성상 가족이 코치가 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6월 18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송파구 SK핸드볼경기장에서 열린 2015보치아 서울국제오픈대회장. 김한수(24·뇌병변장애 1급) 선수는 어머니인 윤추자(56) 코치가, 최예진(25·뇌병변장애 1급) 선수 역시 어머니 문우영(54) 트레이너가 경기 보조로 동반 출전하면서 ‘모자(母子)’대‘모녀(母女)’의 명승부를 펼쳤다.
중증장애 특성상 선수의 공을 굴리는 위치와 홈통의 방향 등을 잡아 줘야하는 특별한 경기 규정에 윤추자 코치와 문우영 트레이너는 자녀를 위해 가장 가까이 소통할 수 있는 ‘어머니’의 이름으로 직접 보조자로 나선 것이다.
윤추자 씨는 지독한 난산 끝에 결혼 3년 만에 첫 아들 한수를 얻었다. 그런 아이가 돌이 지나도 걷기는커녕 목도 가누지 못했다. 인지 반응 검사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나왔다. 엄마는 괜찮다는 병원은 모두 다녔다. 민간요법도 무수히 받았고 꾸준히 언어 치료도 했다. 유치원에 들어갈 나이가 됐을 무렵, 엄마는 그때서야 아들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한수가 주몽학교 5학년에 다닐 때 보치아를 처음 접했어요. 담임선생님이 권했죠. 마침 한수에게 무언가 열중할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였어요. 보조해 줄 사람이 엄마밖에 없다고 해서 저도 보치아에 입문했죠.”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다. 눈짓과 몸짓으로 겨우 의사 교환을 해도 6분 안에 6개의 공을 표적구를 향해 던지는 게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처음 2년 동안은 대회에 출전할 때마다 가장 먼저 탈락했고 한수도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을 수백 번 했다.
엄마의 마음을 읽었던 걸까. 한수는 중학교 2학년이었던 2006년 부산에서 열린 전국대회에서 우승했다. 이전까지는 8강에 올랐던 게 최고 성적이었다.
“이듬해 전국선수권에서 우승하면서 관심을 받기 시작했어요. 한수도 대회 참가를 위해 전국을 돌며 사람들을 만나는 상황을 좋아했죠. 그만두지 않기를 정말 잘했어요.”
그런 아들은 2009년 태극마크를 처음 달았다. 그리고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아경기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그동안 제가 쏟은 눈물이 몇 바가지는 될 거예요.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한수에게 고맙지요. 앞으로도 행복한 마음을 갖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날 경기에서 김한수 선수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예진 선수의 경기 보조원은 어머니 문우영 씨다. 지난 6월 23일 동메달 결정전에서 두 시간 가까이 경기 중인 딸 옆 낚시 의자에 쪼그려 앉아 홈통의 각도와 방향을 조절하고 공을 올려줬다. 체육대학에서 태권도를 전공한 문 트레이너는 남편 또한 합기도 선수 출신으로 건강만큼은 자신했기에 아이가 장애를 가질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에어로빅 체육관을 운영하고 있어서 예진이를 가지고도 하루 4시간이상씩 운동을 소화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 뒤짚기도 못해 보통일이 아니다싶어 큰병원을 찾았더니 뇌성마비 진단이 나온거예요.”
아이에게 너무 미안했다. 일을 핑계로 건강한 아이를 출산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매일같이 물리치료와 언어치료에 매달렸다. 드디어는 특수학교에 입학하고 얼마지나지 않아 아이의 미래를 위해 예진이 동생과 함께 호주 이민을 결심했다. 하지만 호주에서 어학연수를 받던 중 예진이의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 5개월만에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한국에 와서 특수학교인 한국우진학교 고교과정 1학년으로 들어갔죠. 초등학교 때 보치아를 처음 접하는 여느 선수와 달리 예진이는 그때 처음 이 종목을 접했어요. 체육시간에 보치아를 했는데 굉장한 관심을 갖더라구요.”
학교 방과후 밤에 불이 꺼진 체육관에서 머리에 헤드 랜턴을 달고 연습을 할 때만해도 그러다 말겠지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였다. 겨울에 동상까지 걸려가며 연습하는 딸을 보면서 운영중인 에어로빅 체육관을 접고 아예 예진이에게 매달렸다.
“딸의 경기를 비디오로 찍어서 문제점을 분석하고, 시합 전에 상대 선수의 전력을 분석하는 등 사전 준비에 공을 들였더니 성적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거예요.”
예진이는 문씨가 트레이너를 자처한지 2년 만인 2008년 학생체전에서 그해 베이징 패럴림픽 2관왕 김건우를 꺾으면서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뒤이어 런던에서 다시 베이징 패럴림픽 금메달리스트 정호원마저 제치고 금메달을 따내는 기염을 토했다. 남녀 구분이 없는 보치아 BC3에서 여성이 금메달을 딴 것은 패럴림픽 사상 최예진이 처음이다.
“딸이 보치아를 하기 전에는 목도 제대로 못 가누는 허약 체질이었는데 지금은 몸도 건강해지고 일상생활에서도 자신감이 넘칩니다.”
뇌병변장애 1급인 최예진 선수는 경기를 할 때 왼(왼쪽), 위, 오른(오른쪽) 같은 짧은 단어와 눈빛으로, 김한수 선수는 어머니가 한땀 한땀 바느질로 만든 의사소통 판으로 보조기구인 홈통의 높이와 방향을 엄마에게 ‘지시’한다. 엄마는 공이 놓여 있는 뒤쪽을 돌아볼 수 없으면서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아들과 딸의 손발이 돼준다. 찰떡 궁합이 따로 없다.
보치아는 한국이 장애인 스포츠에서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종목이다. 그 뒤에는 언제나 선수들의 뒤를 든든하게 지켜왔던 엄마의 힘이 있었다. 내년 브라질 리우에서 펼쳐질 두 어머니의 활약과 선수들의 선전을 응원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