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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칠천 명’이 있을까? - 시 37편을 읽고 프린트   
희망방송  Email [2016-05-03 14:15:12]  HIT : 375  

<이야기 하나>

요즘 교인들 중에 자기 목사의 논문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논문을 심사하는 교수가 아니면 좀처럼 보지 않는다는 남의 논문을 보는 이유는, ‘우리 목사님도 논문을 표절했거나 베낀 거 아닐까?’라는 의구심 때문이란다.

좋은 소문을 내던 어느 대형교회 목사님이 학위논문 표절 건으로 구설수에 오르더니... 6개월 설교 정지 징계를 받았단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을 하시는 노교수 장로님의 글을 보았다.

가장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해결은 철저한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행동(사임)이었다. 목사가 구차한 변명으로 자해 행위를 하지 않고 인정과 회개라는 너무나 분명하고 당연한 길을 택했더라면, 자신과 교회도 살았을 것이고 한국교회가 입은 명예 손상도 다소 줄어졌을 것이다. 만약 그가 목사직을 사임하고 아프리카 오지 같은 곳에 가서 장애인을 돌보거나 빈곤 퇴치 운동을 시작했더라면 나는 앞장서서 그를 후원했을 것이고 적절한 시간이 지난 후 그의 복권을 강력하게 주장했을 것이다. 한국교회 전체도 그랬을 것이다. 참으로 죽었더라면 명예롭게 다시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너무나 안타깝게도 그는 너무나 당연한 그 길을 택하지 않고 말았다. 우리 복음이 지닌 가장 아름답고 강력한 장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회개하면 용서받고 용서한다는 사실이다. 이 소중한 보배를 목사는 자기의 것으로 만들지 못했다. 나는 이 사실이 표절 그 자체보다 더 안타깝고 더 심각한 실패였다고 생각한다. 밧세바를 범한 다윗의 죄는 천인공노할 만행이었지만 나단 선지자의 지적을 받자마자 그는 철저하고도 진실하게 회개했고 그것이 그를 그전보다 더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만들었다. 안타깝게도, 정말 너무나 안타깝게도 그는 그럴 만한 신앙이 없었다...”

도대체 목회자에게 학위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나도 신학박사 과정을 공부했다. 모든 과정을 마치고 논문을 쓸 자격을 얻었지만 쓰지 못했다.’ 변명이지만 목회현장에 있다 보니 좀처럼 논문을 쓸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런데 내게도 제안이 있었다. 얼마간 비용을 지불하면 개요에 살을 붙여서 논문을 써주겠다는 얘기였다. 걱정해주는 건 고마웠지만, 그게 과연 의미가 있는 짓일까 싶어서 응하지 않았다. 요즘 같아선 거절하길 진짜 잘했다싶다. 박사학위가 없는 게 오히려 잘 사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니... 알다가도 모를 세상사다. 속상하고 민망하기 짝이 없는 요즘이다.

 

<이야기 둘>

10년쯤 흘렀을까? 환경운동을 하시던 목사님 한 분이 단체의 책임을 내려놓으신 후에 잠적(?)하셨다. 그리고 며칠 전에 강원도 어느 산골에서 개신교 수도공동체를 하신다며 전화를 주셨다. 반가워서 한 번 가겠다고 말했다가... 기어이 사회선교를 하시는 지인 몇 분을 모시고 다녀오게 됐다. 네비게이션 지도에 표시도 되지 않는 그 곳을 몇 번씩 전화하면서 찾아갔다. 마지막엔 산길을 걸어올라야 했다. 변덕스런 날씨는 기어코 4월의 함박눈을 쏘다붓는데... 굵디굵은 눈발을 내다보면서 예배하고.. 10여년 세월의 간증을 듣고.. 겨우내 움츠렸다가 이제 막 대지를 뚫고 올라온 봄풀들이 갖가지 모양으로 어우러진 맛난 밥상도 받고... 돌아왔다. 목사님은, ‘가난하게 살아야 십자가의 고난에 가까이 갈 수 있다는 깨달음을 따르고자 가난을 닦고 계셨다. 환경운동을 하신 분답게 그분의 가난의 기준은 전기 없이사는 것이란다. 4년 전에 들어오셨다는 그 산자락엔 겨울에도 얼지 않는 샘이 있어 그렇게 살 수 있었고..., 중고 건자재를 얻어서 한 채를 짓는데 1여년이 걸렸다는데... 지금은 아담하고 예쁜 건물이 두 채나 있고, 움막처럼 생긴 처음 거처들도 있어서 몇 명쯤은 함께 수도생활을 할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었다.

무엇보다도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제대로선포하고 싶은 소망이 목사님의 오늘을 만들었다는 간증을 들으면서.. 잘 사는 것과 잘 믿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심으로 부러워하면서...

 

 

<이야기 셋>

왕지기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아는가? 왕지기는 말을 잘 타기로 유명한 자였다. 마침 그 나라 임금님이 소문을 듣고 그를 불러 말을 잘 몰 수 있는 요령을 물었다. 요령을 다 배운 임금님은 왕지기에게 말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했다. 그런데 세 번 다 임금님이 지고 말았다. 화가 난 임금님은 왕지기를 의심했다.

자네는 나에게 말을 잘 모는 요령을 절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네.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세 번 다 질 리 없지.”

아닙니다. 저는 모든 요령을 다 가르쳐 드렸습니다. 그런데 임금님은 저를 앞지르려고 애쓰거나 저에게 뒤질까봐 온통 저와의 거리에 마음을 썼습니다. 그러나 저는 승부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오로지 말과 한마음이 되고자 열중했습니다.”

말을 잘 타는 사람이란 말과 한마음이 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다. 남을 이기는 사람이 아닌 것이다.

과연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잘 믿는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인생 화복(禍福)의 근원이 오직 여호와께 있다고 믿고,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사는 것이지 않을까. “주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고 주님은 이르셨는데... 많이 가진 사람보다, 많이 이긴 사람보다...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며 행복한, ‘가난한 수도자는 얼마나 있을까? 그런 분들을 보면서 잘 산다고 하고, 잘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또 얼마나 있을까? 주님은 엘리야 때처럼 지금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제자, 구도자 같은 그런 신자를 칠천 명이나 남겨두셨을까?

시편 37편을 읽으면서 나도 오늘 다윗처럼 다짐해 본다.

악한 자들이 잘 된다고 해서 속상해하지 않겠습니다, 불의한 자들이 잘 산다고 해서 시새워하지 않겠습니다.”(1)

주님만 의지하고, 선을 행하겠습니다. 기쁨은 오직 주님에게서 찾겠습니다.”(3,4)

우리가 걷는 길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면,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께서 지켜 주시고, 어쩌다 비틀거려도 주님께서 우리의 손을 잡아 주시니, 넘어지지 않을 줄 믿습니다.”(23,24)

     31. 믿음, 슬픔보다 희망으로 놀라기 - 시편 38편과 함께
     29. 부활, 새로움의 희망 - 시36편을 묵상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