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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슬픔보다 희망으로 놀라기 - 시편 38편과 함께 프린트   
희망방송  Email [2016-05-03 14:16:10]  HIT : 351  

오늘의 시편을 기록한 사람은 다윗이다. 그는 삶이 편안할 때에는 이렇게 말했던 사람이다. “이제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겠지!”(30:6) 곤고할 때에도 주님이 내 목자가 되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23:1)라고 찬송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 다윗은 탄식하며 울부짖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의 인생이 산처럼 굳게 세워졌다고 믿었었는데... 그 산 같이 느껴지던 것들이 무너져버린 것이다. “, 주님의 화살이 나를 꿰뚫으며, 주님의 손이 나를 짓누릅니다. 주님께서 노하시므로, 나의 살에는 성한 곳이 없습니다. 내가 지은 죄 때문에, 나의 뼈에도 성한 데가 없습니다.”(2-3) 무엇보다도 산 같던 건강이 무너졌다. 나병이었을까? 하여튼 그는 지금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고 느낀다. “심장은 거칠게 뛰고, 기력은 다 빠지고, 눈조차 빛을 잃고 말았습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와 친구들이 내 상처를 바라보곤 비켜섭니다. 가족들마저 나를 멀리합니다.”(10-11)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기 쉽다. ‘왜 하필 내게 이런 일이?(불평)’, ‘이건 누구 잘못이지? 도대체 누구 때문이지?(원망)’, ‘어떻게 견디지? 어떻게 피하지?(두려움)’... 그런데 이럴 때, 믿음의 길이 아닌 다른 길로 우리를 끌고 가려는 사탄의 유혹이 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달리 생각해야 한다. 헨리 나우웬의 말이 도움이 된다.

괴로울 때는 고통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우리를 유혹한다. 그러나 고난을 피하지 않고 통과하는 법을 배우면 고난을 다르게 맞이할 수 있다. 하나님이 더 큰 목표를 위해 고난을 사용하실 수 있다는 차원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고난은 사력을 다해 피해야 할 불청객이나 저주가 아니라 더 깊은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길이 된다.”

고난과 고통은 피해야 할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도움을 경험하면서, 믿음이 성숙해지는 길이 될 수 있다. 적어도 다윗의 경험은 그랬다. 고난의 때를 어떻게 통과해야 할까? 다윗에게 배워보자.

 

첫째, 주님께 돌아서라!

핸리 나우웬이 언젠가 본 무언극 얘기를 해주었다.

[ 어떤 사람이 자기가 갇혀 있는 방의 문을 열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 방에는 세 개의 문이 있었다. 그는 손잡이들을 밀고 당겼으나 그 중 어느 것도 열리지 않았다. 그는 발로 문들을 찼으나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그는 온 힘을 다하여 몸으로 문에 부딪혀 보았다. 그러나 어느 것도 부서지지 않았다. 그 극은 어리석으면서도 익살스러워 보였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잠겨 있는 세 개의 문에 집중하였기 때문에 그 방에 뒷벽이 없다는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뒤돌아서 보기만 하면, 그는 마음대로 걸어 나올 수 있었을 것을! 회심이란 바로 이것이다. 회심이란, 우리가 주님께로 아주 돌아서서 우리 자신이 생각한 것처럼 갇힌 게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때, 우리는 종종 방의 잠긴 문들을 열려고 하던 그 배우처럼 보일 것이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라면 더는 그러지 말자. 안 열리는 문들은 주님께 맡기고, 그 주님을 향해 돌아서자.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면 내 사랑을 받고 애타게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라고 말씀하셨다.(8:17 공동) 다윗은 그렇게 했다. “, 주님, 나의 모든 탄원, 주님께서 다 아십니다. 나의 모든 탄식, 주님 앞에 숨길 수 없습니다.”(9) “내가 재난에 빠져 있을 때에 주님께 기도하였습니다”(16) “주님, 나를 버리지 말아 주십시오. 나의 하나님, 나를 멀리하지 말아 주십시오. 빨리 나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나를 구원하시는 주님!“(21-22)

기억하라. 고통이 아무리 길고 힘들게 느껴져도 주님의 은총이 항상 더 크고 영원하다.

하느님

오늘은

제가 많이 아파서

기도를 못했습니다

좋은 생각도 못하고

내내 앓기만 했습니다

몸이 약해지면

믿음은 더 튼튼해질 법도 한데

아직은 그저

두려울 뿐입니다

사람들이 건네주는 위로의 말에

네 네

밝게 응답하고도

슬며시 슬픔 속으로 빠져듭니다

그래도 제가 부를

처음과 마지막의 그 이름은

오직 당신뿐임을

당신은 아시지요? 하느님 (이해인, “아픈 날의 기도”)

 

둘째, 찬송을 결단하라!

헨리 나우웬의 간증을 하나 더 소개한다.

[ 언젠가 캘커타의 테레사 수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많은 문제들로 고민하고 있었던 나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그녀의 조언을 듣기로 마음먹었다. 그녀와 함께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나의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복잡한지 그녀를 납득시키려 했다. 나는 10분 정도 열심히 설명을 했다. 테레사 수녀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글쎄요, 당신이 하루에 한 시간씩 주님을 찬양하고 당신이 알기에 나쁜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면모든 것은 잘 될 거예요.” 그녀의 대답은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그녀의 말은 마치, 복잡한 자기불평이라는 커다란 풍선을 터뜨리고.. 못보고 있었던 저 너머의 참 치유를 보게 해주었다... 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고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녀의 대답이 하나님 편에서 온 것이며 나의 불평의 자리에서 온 것이 아니었음을 알았다. 대부분 우리는 세상적인 질문들에 대해 세상적인 대답을 한다. 그 결과는 더 많은 질문과 더 많은 대답이며, 더 많은 혼란뿐이다. ]

테레사 수녀의 대답은, 문제 해결책을 찾지 말고 하나님을 찬송할 이유를 찾으라는 거였다. 다윗이 그런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나는 아예 귀머거리가 되어 듣지 않았고, 벙어리가 되어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참으로 나는 듣지 못하는 사람처럼 되었고, 입은 있어도, 항변할 말이 없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주님, 내가 기다린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나의 주, 나의 하나님, 나에게 친히 대답하여 주실 분도 오직 주님이십니다.”(13-15)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슬픔으로 우리를 놀래키기를 원한다. 그러나 믿음의 위대한 도전은 기쁨으로 놀라는 것이다. 독일에서 목회하는 후배목사님이 다니러 왔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어두운 얘기들을 나누었다. ‘지역개발이 지지부진하다보니 골목분위기가 낙후하고 있다는 얘기.. ‘한국사회도 교회도 어렵다는 얘기.. ‘독일의 교민 교회들의 상황도 어려움이 많다는 얘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명함을 하나 받았는데, 후배 목사님은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비전과 미션을 만들 때 우리교회 홈페이지에 있는 목회방침같은 걸 응용해 썼다면서 양해를 구했다. 얘기의 방향이 바뀌면서 분위기가 갑자기 밝아졌다. ‘어렵다!’에서 우리 아직 괜찮네!’. 그리고.. 좌석의 분위기가 싹 달라지는 걸 경험했다. ‘우리 아직 살아있네!’ 하는 감동과 함께 웃을 수도 있었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 우리가 그렇게 결단하면 된다. 이제라도, 우리가 기쁨으로 놀랄 것인가? 아니면 계속 ‘(말씀은) 얼마나 좋고 사랑스러운 이야기인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라고 할 건가? 모든 게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지 않는가. 아니, 믿음에 달려 있다. 믿음 아닌 것들에는 우리도 눈도 닫고 귀도 닫자. 삐져나오려는 탄식을 삼켜버리고 오직 주님과 주님의 은총에 놀랄 준비를 하자. 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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