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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그리고 회개 - 시 47편과 함께 프린트   
희망방송  Email [2016-05-03 14:20:19]  HIT : 266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우린 비통하고 참담한 시간 속에 갇혀 있다. 가슴이 먹먹해지고 자꾸만 눈물이 나려 한다. 아이들의 영정을 떠올리면.. 그저 다 미안해진다. 탑승자 476, 구조자 174. 실종자와 사망자 302.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실종자가 사망자로 연이어 바뀌고 있을 뿐이다. 온통.. 우리 주위엔 미안하다부터, ‘보고 싶다’, ‘사랑한다로 이어지는 슬픔의 표현들만 가득하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슬프다. 그런데, 부끄럽고 슬프다. 어떤 공동체의 수준을 알려면, 그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구성원들의 언행을 보면 된다고들 말한다. 세월호 여객선 대참사라는 전대미문의 충격에 휩싸여 있는 우리 사회는 지금 그 수준을 시험받고 있는 듯하다. 불행하게도, 우리 사회는 그 수준이 저열하다 못해 정신적으로 큰 병에 든 것이 아닌가 하는 징후를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총체적인 무능과 비윤리성을 보여주는 소위 당국의 태도도 절망적이거니와,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나 그 가족들과 아픔을 나누기는커녕 그들을 모멸하고 이용하는 참 나쁜 사람들의 존재는 우리를 부끄럽고 슬프게 한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슬픔 가운데서도 우리의 뭐가 잘못됐는지를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안 그러면, 우린 또 망각의 세월을 탓하는 사이.. ‘다시는 이런 쓰레기 같은 나라에서 태어나지 말자는 아이들의 분노의 다짐이 우리 미래를 어떻게 만들지 두렵기 때문이다. 상상할 수 없는 비극이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철저히 따져보고 정직하게 반성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무수히 많은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슬퍼했는데.. 안타까워했는데.. 분노도 했는데.. 반성하지는 않은 것이다. 정직하지 못했고, 무책임했고, 속죄양을 찾아내서 비난하고 매장하기를 무슨 경연대회의 수순을 밟듯이 해왔다. 이번에도, 정부 당국은 정직하지 못했고, 언론 또한 그냥 앵무새였다. 뭐 자랑할 일을 하듯, ‘속보단독보도니 수식어를 달면서.. 그러나 생때같은 자식을 칠흑같이 어둡고 차가운 사지에 둔 채 속수무책이던 부모들에게 그 모든 발표는 무엇이었을까.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는 헌법 34조에 값하는 것이었을까... 그들은 절규한다. ‘국가라면, 국가다운 국가라면 국가가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그들에게 구조의 손길을 뻗어야 하는데... 과연 그랬는가?’ 출항부터.. 아니 헌 배의 구입과 리모델링의 허가부터.. 사고.. 사고대처까지 부실 아닌 게 하나도 없는 것도 미칠 노릇인데.. 구조를 위한 절체절명의 시간이 책임회피와 거짓말의 파도와 함께 그렇게 흘러갔으니... 유속이 빠르고 시계가 좁아 잠수 자체가 어려웠다고 하지만 대천명’(待天命) 이전에 진인사’(盡人事)를 했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그리고... 이젠 선원들과 구원파만 족쳐대고 있다. 늘 그랬다. 우린 늘 누군가를 원망하고 비난하며 면피에 급급했다. 늘 북한이 단골이었고.. 그러면서 반성하지 않았다. 물론 그들은 비난 받고, 원망 받아 싸다.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러느라고 이 악한 때에 반성의 기회를 놓치면... 그 다음엔 우리와 우리 자녀들의 차례가 아닐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건강한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이기적인 탐욕을 따르는 사회가 된 것을.. 반성해야 한다. 안전띠를 홍보하면서, 어느 나라에선가는 “It’s the law!(법이오!)”라고 하면 된다는데... 우리나라에선 안전띠는 생명띠!” 같은 식으로 홍보해야 한다. 이득이 되니 하란 뜻이다. 따져보면 우리사회는 법치가 아니다. 인맥과 자본을 따라 탐욕이 치리하는 사회다. 그것들이 법위에 있어서, 법과 정의가 공동체의 근간이 되지 못한다. 오늘 말씀 시 47편처럼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며 선포하고 찬양해야 할 교회마저 예외가 되지 못하고, 우리사회의 거울 노릇을 하고 있다. 거짓 없이 사는 것도,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도... 그게 주님의 뜻이라거나 믿음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래야 복 받는다고 설득하며 읍소한다. 진리와 주님의 뜻을 말하면서도 결국 우리와 나에게 이익이 되느냐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이런 우리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반성에 그치지 말고 회개하라고... 예수님은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다.(6:29) 이익을 위해 예수를 찾지 말고, 예수를 믿는데 인생과 믿음의 가치를 두라신 것이다. 요한복음 6장엔 오병이어이야기와 바다를 걸어오시는 주님이야기가 소개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다니게 됐다. 그러나 그들이 주님을 찾는 이유는 진리를 발견하거나 구원의 길을 찾았기 때문이 아니다. “떡을 먹고 배불렀기 때문이다!”(6:26) 이단이 이단인 이유는, 진리가 아니라 탐욕을 쫓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정통이라면, 진리를 가졌기 때문일 텐데.. 진리는 좇지 않고 이득을 좇는다면.. 그리고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과연 정통일까?

이제 정말, 회개해야 한다. 회개는 심판을 받으며 돌아오는 거다. 아니 심판을 받기위해 돌아오는 것이다. 누가복음 3장을 보면 광야의 요한에게, “독사의 새끼들이란 욕을 먹으면서도 찾아온 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한 일이 바로 회개다. 그들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심판 받음으로 맺었다. 옷 두벌 가진 자는 가난한 자에게 한 벌을 주고.. 먹을 것도 그리하고.. 세리는 정직하게 일하고.. 군인들은 강탈과 거짓 대신 섬김과 정의를 위해 살게 됐다. 그렇게 돌아왔다. 다시 말하면, 소유가 줄어드는 심판과, 이득이나 편리함을 포기하는 심판을 받은 것이다. 우리 시대의 회개는, 공적 책임감 회복을 위해 사적 이득을 희생하고.. 악에게 희생된 자를 위로하고 치료하는 일에만 매달리며 누리던 기득권적 평안을 버리고, 처음부터 악을 경계하며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게 회개다. 카톨릭은 이미 새 교황이 교회의 상업화, 관료화, 출세주의를 비판하면서.. 사회적 구원과 정의를 신앙실천의 방향으로 선언했다. 기독교 전체가 스스로 심판을 받으면서 그런 방향으로 회개해야 한다. 우리사회 전반에 회개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이 세대의 슬픔과 분노와 수치를 넘어 희망을 만들 수 있다. 그게 이웃사랑이고 진짜 선교다. 모두가 겸손하게 기도하면서, 성령의 도움을 구하면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와 싸우셨던 그 싸움을.. 우리도 싸워야 한다. 그리고 이겨야 한다. 울면서.. 그래야 한다. 그것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영접하는 기도이므로..(47) “주님,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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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나는 두렵지 않다! - 시 46편 묵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