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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이희준-뻔뻔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프린트   
heemang  Email [2016-05-04 15:13:27]  HIT : 33  

제목: 뻔뻔하게 그리고 우아하게 
  ‘난 부탁했다, 작자 미상(미국 뉴욕의 신체장애자 회관에 적힌 시)’---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의 장애를 하루속히 인정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것은 희망은 부득이, 살아야 할 필요가 있는 자에게만 하늘은
마지막으로 시험과 축복을 내리기 때문이다.
  새는 맞은편에서 불어오는 역풍을 저항이라고 생각하고 '아, 저 바람만 없으면 내가 더욱 빨리 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러나 새는 역풍이 불지 않으면 날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도 우리의 장애가 우리의 비상을 방해하는 조건이 아니라 우리를 날 수 있게 하고 고양케 하는 조건의 관점이라고 인정을 한다면, 우리도 저
푸르른 창공을 자유로이 '훨훨' 날 수 있다.     
  병은 육체에 장애를 일으킨 것이지 의지에 장애를 일으킨 것은 아니다. 의지가 스스로 질병을 불러들이지 않는 한 장애는 행동에 불편할 뿐이지
신념까지 장애는 아니다.
  나는 어떤 믿음에 이제 막 서툰 날개 짓을 하면서 여기에 나오게 되었다. 혹여 이 순간에도 외로이 홀로 아파하며, 두려움에
떨고 계실 분들이 하루속히 아픔을 딛고 일어났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쓰고자 한다.
  우리는 병마에 시달리거나 장애를 얻게 되면 마음이 약해져, 더욱 깊은 어려움에 빠지거나, 죽음을 선택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기에서
다 시한 번 자신의 주위를 둘러보면,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도 수두룩하고, 그런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우린 그 사람들을 통해서
동병상련의 많은 힘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장애를 입었다고 방구석에 벌레처럼 웅크리고 앉아 주위 사람들의 멸시와 손가락질만 받으며 앉아 있을 수만은 없지 않은가? 고통은 사람을
강하게 만든다. 고난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자기 자신을 알게 된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비록 병마와 장애는 가지고 있지만 구부러지면
구부러진 데로 우리도 예쁜 꽃을 피우고, 보람찬 열매도 맺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약간의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나의경험상 어두운 밤이 되어도  태양이 존재 하는 것처럼 확실한 경우 이다.
나는 90년 중반 즈음, 서른셋의 나이로 베체트라는 난치병으로 두 눈을 잃었다. 역시 그 즈음에 피눈물을 흘리시다,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하신
아버지를 잃었고, 설상가상 착한 아내와도 헤어졌다. 그때는 오로지 죽음을 생각했기에 보내긴 했지만, 지금에 와서야 그것이 그렇게 후회스럽고
어리석은 짓이었다는 것을 몰랐다. 이럴 줄 알았다면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매달렸으련만 결국 나는 그 누구도 잡질 못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웃음도 나오지 않지만
그때는 붙잡는 것은 고사하고 그랬다, 나는 공황 상태로 골방에 웅크리고 앉아 오직 죽음만을 구상하다가 갑자기 귀신에 홀린 것처럼 2층 베란다를
뛰어내리고 
식칼을 가져다 배를 가른다며 난동을 부리며 미친 짓을 했다.
오직 죽음, 죽음, 살아서 뻐르적거리느니 차라리 죽자
 하루가 저물도록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생각하는 것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그때마다 부모님은 피눈물을 감추셨고, 이웃들은 찾아와 위로라
하고 돌아갔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었다. 
그리고 우울증, 고립, 두문불출.
 그때 난 지치고 쇠약해저 몰골이 겨우 숨만 쉬는 산송장이었다. 흡사 내가 누워 있는 작은 임대아파트가 초상집 같은 것이, 서너 평 되는 안방 겸, 거실 윗목 쪽에는 여 집사님이 가져다 준 성경 테이프에서는 염불처럼 성경이 무한 반복되고 있었고,
말 그대로 시체 썩는 냄새가 온 방안에 진동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마도 이만 때나 되는가 싶다. 그날도 나는 불면으로 새벽까지 뒤척이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을까? 비몽사몽간에 난 분명히
들었다. 그 소리는 어떤 여자 성우의 음성 같기도 했지만 그 보다는 조금 더 신비하고 영롱한 천사의 음성 같았다.
 "'하늘에 나는 새도 먹을 것을 주고, 들에 핀 꽃도 아름다운 색을 주는데, 하물며 너는 내 아들인데, 너를 그냥 두겠느냐?"
무슨 조화인지 음성은 메아리처럼 온방에 울리고 있었다. 순간 나는 작살 맞은 물고기처럼, 아니 백만 볼트, 고압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온몸을 '파르르'
떨다가 나도 모르게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두 무릎을 꿇었다. 처음엔 충동적으로 무릎은 꿇었지만 점차 내 지난 일들이 주마등처럼 특히 양심을 속였던 일들이 '쭉'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폭포수 같은 눈물과 함께 잘못했다는 소리가 입 밖으로 흘러 나왔다.
'잘못 했습니다' 정말 나는 죄인이라고 얼마를 울었는지 모른다. 무릎이 저려왔지만 차라리 그 고통은 '환희'였다. 나는 좀 더 이 기쁨을 느끼려
애써 눈물을 더 짜내기도 하였지만, 난 그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 이렇게 사는 거야'
 '넌 줄 것도 없고, 이제 잃을 것도 없다'는 음성이 공명되어 가슴을 때리고 있었다.
'됐어'
'예수님 감사 합니다, 감사 합니다' '이제 덤으로 사는 삶, 오늘이 제 생일입니다'
나는 너무 가슴이 벅차, 허공에 주먹질을 하면서, 대문을 나섰다. 생각 같아서는 아파트 광장에 나가 소리라도 치고 싶었지만 나는 '됐어'
'됐어'를 연발하며, 아파트 15층 계단을 미친놈처럼 오르내렸다. 아마 실명하고 대문을 나선 것이 2년도 넘는가 보았다. 그것이 두 눈과
모든 것을 상실한 후 첫 외출이었고 걸음마였다
나는 그 후 아무걱정도 없이 승승장구 하였다. 하고 싶은 대학 공부도 하고 안마사 자격증에 점역 점자, 보행 교육, 복지관에 헬스운동까지, 난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정신없이 바쁘게 살았다.
  사실 나는 나이 서른셋, 시각장애를 입기 전에는 9백마일 해상을 수호하던 해군을 전역한 175cm의키에, 피부 깨끗하고 호수처럼 맑고 초롱 한
눈에 제법 장래가
촉망되는 아주 신체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였다. 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다니던 건축 설계 일을 그만 두고 독서실 생활을 하던 중, 베체트
병이라는 것이 찾아와 녹내장 합병ㅡ로 실명을 하게 된 것이었다.
참 세월이 유수와 같다 던이, 상심하여 마음 둘 곳 없어 눈물 흘릴 때가 엇 그제 같은데 벌써 20년 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때를 생각해 보니 '하늘에 나는 새도 먹을 것을 주고.'라는 성경 구절이 생각에 그러고 보니, 요즘 음식이 남아서 문제지 밥 굶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역시 성경말씀이 그대로 이루어 졌다는 사실에 우스게 소리를 하지만,
정기적으로 들러는 안과 외래의 환자들을 보면서 정말 남에 일 같지 않아 나도 몰래 기도하면서 조용히 그 성경 구절을
암송 하게 된다. 물론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일종의 기우이겠지만 그래도 그들의 음성에서 예전에 나를 보는 것 같아 가슴 아픈 연민을 느끼곤
한다. 하긴 요즘 설령 장애를 입는다 해도 워낙 제도나 시설이 잘되어 있어, 적응도 빠르다고 들었다. 그때만 해도 두문불출 하면서 남들보다
밖으로 나오는 것이 늦어진 것은 90년대 중반이라 지금처럼 컴퓨터도, 재활 시설이나 제도가 아직은 활성화 되지 못한 탓도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각장애인협회는 물론이고 컴퓨터를 이용해서 검색해 본다면, 충분히 재활 정보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재 나도 얼마만큼 장애에 대해 자유로워 졌다. 물질적으로도 가끔은 고기반찬을 올릴 수 있을 정도로 조금은 여유로워 졌다. 그러나 사실은
나의 사고방식에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었다. 지난 해 인가 나에겐 최악의 시련이었다. 지독한 아이러니, 그리고 구설수 .
 장애인의 사춘기라도 있는 것일까? 질풍노도의 시기라도 있는 것일까?
어린 애도 아니고  이유 없는 반항이라 해야 할까? 아니면 갱년기가 오는 것일까? 지독한 피해의식이 나를 완전 고립시켜버렸었다.
특히 기득권의 부조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그들과 맞서다 아주 처참하게 고립되고 말았다. 나는 그때 그 기세로는 이 세상 모든 악을 소멸하고도
남을 것 같았다. 결국 법을 앞세우고  권리를 주장하던 나는 보기 좋게 나가 떨어 졌고 그 여파로 장애인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교훈하나를 뼈저리게
각인하고 말았다.
가끔 다녀가시는 목사님은 이런 나의 불만을 누구나 가지는 정체성이라 하시며 마음을 잘 달래라고 충고 해 주셨지만, 나는 또 다시 나는 그 고립과
절망의 악몽이 되살아나 한동안 울분에 시달려야 했다. 다행히
여러 집사님들이 찾아와 주고 목사님은 중재자에 메신저 역할까지 해주셔서 마음이 원만히 풀어지고 나는 다시금 장애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세상사는 법을 하나 더 깨우치게 된 나는 장애인은 비장애인처럼 자유롭게 활동 할 수는 없지만 가지지 못해도 마음의 사랑과 너그러운 관용은
자신의 의지로 충분히 가질 수 있는 부분 이라고 생각 한다. 분명한 것은 돈과 질투 욕심 따위로는 사람을 가까이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것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세상은 절대 혼자 사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내 마음 같지가 않다는 것
삶은 과정이지 결과는 아니라는 점을 확실히 인식했다. 나는 그동안 아니한 타성에 젖어 혼자만 잘났고 오직 나만 생각했던
것이다.
일본의 작가 히치다 겐자로는 타성에 젖어 자아를 상실했을 때는 뒤돌아보는 것이 최선이라 하였다. '지금의 현 상태도 옛날의 어려웠던 시절로 되돌아가서
비교해 보고, 아니면 지금조차도 자신보다 힘든 여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비교해 봄으로써 자기가 현재 빠져 있는 타성을 넘어서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예를 들면 '지구 전체 인구를 100명으로 가정했을 때 문맹자는
14명이나 된다. 컴퓨터를 소유한 사람은 8명밖에 안 된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은 4명밖에 안 된다. 은행구좌를 갖고 있는 사람은
30명밖에 안 된다.
나는 통장도 있다, 집도 있고 인터넷도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똥을 싸서 아주 깔아뭉개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행복한 삶을 위한 방법 중에 하나는, 삶을 관조하고 음미하며 어떤 것과 관계를 어떻게 잘 맺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예를 들자면,
돈과의 관계 여러 친구들과의 관계 그리고 믿음 안에 신앙은 나의 중심을 결정하는 일이기에 더욱 조심스러운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관계를 맺는데 있어 장애인이 왜 교회와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몇 가지를 제시한다면, 먼저 여러 형제자매님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 믿음 안에서 의지와 관심을 받을 수 있다. 또 문제가 있으면 교회 안의 직분을 가지신 분들의 중재자들의 역할을 통해 불만을 이해하고 해소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믿음 안에서 아픔을 이해해 주고 장애인들을 통해 자신은 이 사람보다 낫다는 우월감을 가질 수 있다. 측은지심에서 사랑을 배우고 장애인은 여러 도움에 감사함을 배우며, 장애인은 불편한 활동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또 별도의 이야기지만심심해서 책을 읽는다. 조화롭게 사는 책과의 관계를 통해 나는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 물론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아도 행복하려면 이 세상 살기위해서는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선택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장애라는 것이 특별한 것도 업는 것 같다 않니 있다면 아주 특별한 것이 한 가지
있기는 하겠다. 천하에 삼천갑자 동방석이가 다시 살아온다 할지라도 해 볼 수없는 '경험' 말이다 인디안 속담에 나이 먹어서 지혜롭지 못하면 인생을
헛살아 온 것 이라고 한다. 이 말은 나이를 먹은 말이 고향을 찾아간다는 격언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그만큼에 경험이 지혜가 되어 힘든 환란을 이겨낼 수
있다는 이야기이고, 그 만큼 장애의 경험은 인생을 보다 풍부하게 보다 깊이 이해하고 관조하는데 좋은 신념이 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장애의 아픔이나 한번 무덤까지 다녀 온 경험들은  오히려  수없이 단련을 받음으로써 욕심을 버리고  마음 편히
사는 튼튼한 밑거름이 되어있는 것 같아서 그 또한 전화위복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인생은 세웅지마 라는 말을 실감 하게 되는 대목이다.
사실 나는 얼마 전까지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내 마음 같은 줄 알았다. 또 나아니면 지구는 돌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잘못이다. 오히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일어날 테면 일어나라고 그냥 놓아두는 것이, 마음 편하고, 일이 훨씬 잘 풀리는
경우가 있다. 서두에서도 잠깐 언급했듯이 나는 이 기다림을
희망이라 부르고 싶은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묵묵히 기다리면 언젠가 때가 되면 응답을 주신다. 요즘 난 무릎을 꿇고 아래와
같은 시나 구절을 음미하며 기도드리는 것에 재미가 들렸다. 그것이 처음 천사의 음성을 의식해서 그런다고는 부정하지 않겠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무런 감응이 없다 하더라도 나의 그런 과장된 행동은 나에겐 아주 중요하고 성스러운 예식이기 때문이다.
 아래 시는 미국 뉴욕에 있는 신체장애자 회관에 적힌 시이다. 자신의 기도 제목을 지향해 보면서 읽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올려 본다.
 나는 신에게 나를 강하게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나를 약하게 만들었다. 겸손해지는 법을 배우도록.
  나는 신에게 건강을 부탁했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내게 허약함을 주었다. 더 의미 있는 일을 하도록.
  나는 부자가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행복할 수 있도록
  하지만 난 가난을 선물 받았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나는 재능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래서 사람들의 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하지만 난 열등감을 선물 받았다. 신의 필요성을 느끼도록.
  나는 신에게 모든 것을 부탁했다.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지만 신은 내게 삶을 선물했다.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도록.
  나는 내가 부탁한 것을 하나도 받지 못했지만
  내게 필요한 모든 것을 선물 받았다.
  나는 작은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신은 내 무언의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나는 가장 축복받은 자이다.
  ‘난 부탁했다, 작자 미상(미국 뉴욕의 신체장애자 회관에 적힌 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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