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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이충묵-나는 행복한 사람 프린트   
heemang  Email [2016-05-04 15:14:14]  HIT : 51  

[“나는 행복한 사람”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의 건설현장에서 사고로 말미암아 죽음의 언덕을 넘어갈 때 예수님을 만난 것이 기적이고, 3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살아서 활동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할 수 있어 행복하다.
2009년 익산과 군산에서 방송되는 케이블 텔레비전 금강 방송에서 전화가 왔다.
벼룩시장 신문에 나온 제 간증 기사를 읽고 은혜를 받았다면서 방송에 출연해 달라고 한다.
그런데 내게 큰 문제가 있었다.
끓인 국을 다리에 쏟아 화상을 심하게 입어 1개월 동안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고 있으니 다음에 나으면 촬영하자고 거절했더니 시청자들이 그런 모습을 보아야 감동이 된다면서 내일부터 촬영하자고 한다.
간절하게 부탁하는 작가의 요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3일 동안 내가 활동하는 모습과 집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방송에 나오는 제목을 보니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사흘 동안 내가 사는 모습을 보고 작가가 제목을 지었을 것이다.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살면 걷고 뛰고 뛰지 못하는 장애인도 행복하다는 것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 감사했지만, 화상을 입은 곳에 아픔이 더욱더 심하여 고생도 많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려면 내 것을 회생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지구촌의 약 73억 명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마음껏 기도하고, 찬송하며, 예배드리고, 전도해도 방해를 받지 않는 대한민국에 태어난 것에 감사한다.
세월은 안개와 같고 그림자같이 빠르다고 하는 그 말에 실감이 간다.
30년 전에 나도 육체가 건강한 사람이었으나 사고로 말미암아 영원히 걷고 뛰지 못하는 하반신마비 1급 척수장애인이 되었다.
그렇지만, 육체가 건강할 때보다 장애인이 된 후의 삶이 행복하다.
“왜, 무엇 때문에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세상에서 방황하던 내가 고난을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내가 시골에서 살고 있을 때 늘 배가 고파도 먹을 것이 없었다.
전쟁이 끝나고 휴전협정을 맺은 얼마 후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결혼한 후 친정에서 물려주신 논과 밭의 서류를 아버지가 아는 분에게 맡겼는데 자기 것으로 등기하였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우리 집에 있었다는 것을 최근에 알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
아버지는 빚을 얻어 사기꾼과 7년 동안 재판하느라 몸과 마음도 상하고, 재판에 이겼지만, 사기꾼으로부터 한 푼도 받지 못했단다.
시골에 살 수 없어 도시로 나왔으나 병으로 앓던 누님과 동생이 둘이나 떠나고, 동생이 또, 소아마비 장애를 앓았으니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셨을까?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다.
마음의 병이 몸으로 옮겨진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어머니도 병이 들어 병원에서 나을 수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고난을 통하여 어둠이 가득했지만, 한 줄기 빛이 우리 집에 비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어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벽을 깨우며 기도하고 열심히 교회를 섬겼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나는 사춘기를 심하게 앓으면서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돈이 없어 배우지 못 하고 세상에서 방황하며 사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 같은 죄인이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은 어머니의 기도와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할 수 있어 행복하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고린도후서 5:17 
어머니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9년 동안 열심히 교회를 섬기다가 47살에 아픔과 고통이 없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셨을 때 나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아픔을 참고 사는 것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기 때문이다.
내가 청년으로 성장하여 건설현장에서 일할 때 외국으로 나가는 꿈을 꾸고 1981년 6월 30일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출국하여 오만 현대건설현장에 근무하면서 우리나라가 참으로 아름다운 나라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여름은 너무 더워서 한 그루의 나무도 곱게 자랄 수 없으며 백엽상의 온도계의 끝까지 올라가는 날이 많았다.
논과 밭에 곡식이 자라고 산과 들에 꽃이 피도록 때를 따라 비를 내리는 우리나라는 참으로 좋은 나라다.
“오만에서 제발 빨리 떠났으면 좋겠다.”
마음속의 기도가 통했는지, 4개월 후 리비아 벵가지로 전출되었으나 리비아도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
사막에서 불어오는 열풍과 바다에서 밀려오는 습도로 말미암아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는 날이 많아 힘들었다.
열악한 환경에서 더위를 참고 일하느라 사고로 말미암아 죽음을 맞이한 근로자를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15개월을 근무하고 귀국하여 잠시 교회에 다녔으나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온 것에 아쉬움이 많았다.
다시 출국하여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건설현장에서 12개월을 근무하고 귀국하여 친구의 소개로 결혼하고 5개월이 되었을 때 3일 후 출국하라는 전보를 받고 고민을 했지만, 내게는 선택권이 없는 것 같았다.
가난을 극복하는 길을 이길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출국하면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굳게 다짐했다.
김포공항을 이륙하여 11시간 후 사우디아라비아 공항에 도착하여 밖으로 나오는 순간 사막의 뜨거운 열풍을 맞으면서 고향에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을 하는 것은 고국을 떠나 27개월을 사막의 건설현장에서 근무하였기 때문이다.
현장 날씨에 적응하며 4개월이 지났을 때 쉬는 날인데 특근을 한다고 방송을 듣고 하나둘 근로자들이 밖으로 나간다.
돈을 벌려고 무더운 사막에 왔으니 현장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 현장에서 열심히 일이나 하자!”
1985년 11월 15일 크레인에 매달린 1, 2톤의 건축 자재가 내 몸 위에 떨어지는 순간 내가 이곳에서 죽는구나!
정신을 차리자! 정신을 차리면 살 수 있다.
쓰러지면서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동료들이 달려와서 내 몸 위에 쌓인 자재를 모두 옮겼지만, 어찌 된 일인지 나는 스스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다리에 힘을 주어봐!”
다리에 힘을 주어도 전달되지 않네요.
다리에 힘이 전혀 가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네 사람이 손과 발을 하나씩 잡고 자동차로 옮기는 동안 허리에 통증이 심하여 죽을 것 같았다.
허리와 갈비뼈가 골절된 줄 아무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캠프에 돌아와 병원에 가는 절차를 밟는 동안 야전 침대에 누워 움직이지 못하는 현실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 내가 왜, 이렇게 움직일 수 없는 몸으로 변했을까?
조금 전에 걸어서 출근했는데 꿈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얼굴을 꼬집어보니 꿈은 아니고 현실이었다.
늦은 밤 병원에 도착하여 진찰을 받은 후 회사의 직원은 돌아가고 아무도 없는 외국인 병실에서 죽음이 두려워 눈을 뜨고 밤을 보냈다.
내 곁에 있는 환자들은 사람이 찾아오고 의사가 치료도 하는데 내 곁에는 아무도 없고 치료도 하지 않아 외로움이 밀려왔다.
둘째 날 오후까지 아픔을 참다가 간호사에게 언제부터 나를 치료하느냐 물으니 나에게 놓을 주사가 없다는 소리를 듣고 절망이 앞을 가린다.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는 고통이 뼛속에서 밀려오는 중환자에게 흔한 진통제 주사도 없다니 서러움이 밀려온다.
병원에서 내가 죽기를 바라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고 서러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렇지만, 대화를 나눌 사람이 아무도 없다.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죽을 것 같아 간호사에게 도움을 청하니 귀찮다는 듯 호출기 코드를 빼고 다시는 내 곁으로 오지 않았다.
내 몸의 어느 곳을 다쳤다고 알려주는 사람도 없고, 내가 죽으면 얼마 후에 태어날 내 아이는 어떻게 될까?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는 통증을 감당하면서 지난밤에도 뜬 눈으로 보냈기에 졸음이 밀려오면서 눈이 아프다.
눈을 감으면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을 때 아픈 것을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졸음이 밀려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자지 말고 조금만 눈을 감고 쉬자! 조금만 감고 있자.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을 때 어릴 때부터 서른 한 살이 된 내 모든 삶을 환상으로 보고 눈물을 흘리면서 통곡했다.
“내가 세상에 살면서 이렇게 많은 죄를 지었는가?”
나는 지옥에 가도 할 말이 없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 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5:32
하나님 제가 죄인입니다. 나를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아서 서울에 가면 하나님을 믿겠습니다. 나를 살려주세요.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셋째 날 아침에 처음으로 회사에서 직원이 왔다.
3일 만에 보는 회사의 직원을 보고 너무도 반가웠다.
왜, 나를 치료하지 않는 것이냐고 직원에게 물었다.
“회사에서 서울에 가는 준비를 하고 있으니 아파도 조금만 참으세요.”
그 말을 하고 직원은 회사로 돌아갔다.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라 믿었다.
서울에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빛을 발견하고 주야로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시편 50:15
30년 전에 사막에서 죽을 수밖에 죄인이었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 하려고 이 글을 쓰고 있어 행복하다.
고난이 앞에 있을 때 사람에게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문제가 해결되리라 믿는다.
서울에 돌아가기 전날 골절이 된 허리를 석고로 감싸고 아침에 구급차를 타는 순간 감사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내가 살아서 서울에 간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고가 나고 일주일 만에 꿈에도 그리운 우리나라에 돌아올 수 있도록 자비를 베풀어주신 기적의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올립니다. “짝짝짝”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서울 순천향대학병원에 입원한 8일 후 아내가 딸을 순산한 며칠 후 골절된 허리를 11시간 동안 수술하고 회복실로 가면서 의사 선생님께서 내게 말씀하신다.
“앞으로 팔에 힘을 키우세요.”
영원히 걷고 설 수 없는 하반신마비 1급 장애인이 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 소리를 들어도 나는 절망하지 않았다.
꿈에도 그리운 한국에 살아서 돌아왔기 때문이다.
3개월 동안 침대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치료를 받느라 눈물도 많이 흘렸으며 처음으로 휠체어를 타는 순간 온몸에 힘이 빠지면서 아픔과 고통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마음으로 느꼈다.
휠체어를 타는 순간 기절했다는 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떠날 때 안개와 같이 아픔이 사라지는 것임을 체험했다.
1986년 5월 휠체어에 앉아 바퀴를 굴리며 삶을 이어가던 어느 날 의사 선생님께서 내게 묻는다.
이충묵 씨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해보겠습니까?
선생님! 제가 장애인이 되었는데 도움을 받아야지, 누구에게 도움을 주겠습니까?
그래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충묵 씨가 골수를 기증하면 백혈병에 걸린 아이의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강요하는 것이 아니므로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한 번 생각해 볼게요.”
옆집에서 살던 후배가 부모님께 효도하고 공부도 동네에서 제일 잘했는데 백혈병으로 죽었을 때 마음이 아팠는데 내가 골수를 기증하면 어린 생명을 살릴 수 있다는 말씀이 가슴속에서 쿵쿵 뛰기 시작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기증하겠다고 도장을 찍었다.
골수를 기증하는 날 수술실에서 드릴로 허리뼈에 구멍을 뚫는 순간 아픔이 심하여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는데 선생님께서 조금만 참으세요. 아파도 조금만 참으세요.
“사랑을 베푸는 것이 이렇게 아프구나!”
큰 주사기에 골수를 가득히 뽑은 후 아이에게 빨리 시술해야 한다며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가 함께 뛰어간다.
30년 동안 장애인으로 살면서 아픔과 괴로움도 많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내 삶의 열매로 있었다니 참으로 감사하다.
몇 개월이 지났을 때 골수를 기증받은 아이의 어머니가 빵과 우유를 가지고 병실에 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나누고 오늘까지 만남은 없다.
골수를 기증받은 아이가 건강한 몸으로 회복되어 행복하게 살고 있기를 소망한다.
세상으로 나갈 때가 된 것 같아 의사 선생님과 퇴원하겠다고 상담하니 6개월은 더 있어도 되는데 왜, 빨리 나가느냐고 반문한다.
1급 장애인이 세상에 나가서 사는 것이 힘들겠지만, 영원히 병원에서 보낼 수는 없었다.
1년 6개월을 병원에서 보내고 하반신마비 1급 장애인이 되어 고향으로 내려와 전에 다녔던 교회를 찾아갔다.
건강하던 사람이 휠체어를 타고 나타나니 목사님께서 깜짝 놀라신다.
목사님의 도움으로 교회에 잘 다니고 있을 때 아내는 자기가 다니는 교회만 구원이 있고, 세상의 모든 교회는 구원이 없다고 강변한다.
어머니가 믿었던 하나님과 사막에서 내가 만난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설득해도 부정하고, 목사님과 전도사님이 설득해도 자기가 믿는 교회만 구원이 있다고 강변할 때 참으로 아쉬움이 많았다.
딸이 유치원에 다니고 있을 때 자기가 다니는 교회에 나오면 함께 살고 그렇지 않으면 이혼하자고 한다.
장애를 입은 남편과 자기가 낳은 아이도 외면하는 사람의 마음은 정상이 아니다.
자기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내 손을 두 다리로 누르고 목을 졸라 죽이려고 한 적도 있으며 내가 그 교회에 다니지 않겠다고 하니 결국 내 곁을 떠났다.
어린 딸과 함께 살면서 어려움도 많았지만,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길 수 있어 감사하다.
하나님의 은혜로 딸이 건강하게 자라서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다니고 있어 감사하다.
건강한 교회를 부정하고 자기가 다니는 교회만 구원이 있다고 선전하는 사람이 이단임을 깨달아야 한다. 
1992년 11월에 세례를 받고, 93년도에 집사의 직분을 받았으나 신, 구약 성경을 한 번도 읽지 않은 것이 부끄러웠다.
직분을 받고 10년을 섬긴 집사와 1년이 된 집사의 이름은 같지만,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고 어떻게 하면 믿음이 좋은 집사가 될 수 있을까?
또한, 교회에서 열심히 섬기는 집사를 모델로 삼고 저분이라면 집사님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괜찮겠다.
“나도 저 집사님을 닮아 믿음이 성장했으면 좋겠다.”
5년 동안 구약과 신약 세 번을 노트에 필사하고 아이와 같은 믿음이 자라서 감사했다.
교회에 자동차도 없고 목사님도 운전을 못 하셨기에 10년 동안 목사님과 성도님을 운전으로 섬기면서 아픔으로 말미암아 입원도 여러 번 했으나 섬길 수 있어 감사했으며 오늘도 진리의 말씀을 묵상하고 내 삶을 돌아보며 아름다운 삶의 열매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1992년 10월 22부터 시작한 성경 필사가 2014년 1월 26일까지 구약과 신약 19회를 마치고 20회째 필사하고 있어 행복하다.
어느 날 꿈속에서 손을 저으며 하늘로 올라가는데 땅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수많은 사람을 보고 땅으로 내려왔다.
바로 그때, 두 분이 내 곁에 와서 묻는다.
천국에 올라가지 못하고 앉아 있는 사람을 위하여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을 때 전도하지 못한 내 모습이 참으로 부끄러워 답을 못했다.
100명, 1,000명, 몇 명을 구원의 목표로 삼겠느냐고 물으실 때 고개를 숙였다.
부끄러운 내 모습을 감추려고 체육공원에서 운동하는 사람에게 6개월 동안 휠체어를 타고 열심히 전도하면서 멸시와 천대도 받았으나 행복했다.
지금은 교회 전도팀과 매주 목요일은 병원에서, 주일 오후에 버스터미널에서 전도자를 운전으로 섬기며 함께 복음을 전하고 있다.
1급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전도하기가 쉽지 않아 때로는 멸시를 당하고 외면을 당하지만, 열심히 하네요.
몸도 불편한 사람이 전도한다며 격려하고 교회에 나가겠다고 약속한 분도 많다.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의 건설현장에서 사고로 말미암아 죽음의 언덕을 넘어갈 때 예수님을 만난 것이 기적이고, 30년이 지난 오늘까지 살아서 활동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음을 고백할 수 있어 행복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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