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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이소나-약할 때 강함 되시네 프린트   
heemang  Email [2016-05-04 15:14:32]  HIT : 43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내 삶의 이유, 내 삶의 전부, 내 삶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존경하는 은사님과의 만남을 하루 앞둔 날. TV 뉴스 속 기상캐스터의 낭랑한 목소리로 전해지는 일기 예보에 그만 어깨가 축 늘어지고 말았다.
“에휴... 그럼 그렇지.”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몇 날 며칠 콧노래가 절로 나올 정도로 쾌청함을 자랑하다가도 어쩌다 한 번 중요한 일정을 앞두고 ‘내일은 꼭 날씨가 좋았으면’하고 생각하는 날에는 어김없이 비나 눈 등의 악천후를 맛보게 되는 일명 ‘날씨 머피의 법칙’이 또 한 번 정확하게 명중한 것이다.
겨울하면 눈, 눈 하면 겨울. 실과 바늘처럼 뗄래야 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모르는 바도 아니거늘, 일상적인 계절의 일기 예보에 이토록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몸의 중심이 균일하게 실리지 못하는 탓에 멀쩡한 거리에서도 이리저리 픽픽, 넘어짐이 일상인지라 겨울에 찾아오는 빙판과는 상극 중의 상극일 수밖에 없는 나는 장애인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내게 무슨 계획을 세워두셨는지 나를 10개월이 아닌 8개월 만에 세상으로 보내주셨고, 그 때문에 나는 태어나자마자 엄마 품이 아닌 인큐베이터 속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인큐베이터 안에서 산소 호흡 조절에 오차가 생기며 운동신경이 마비되는 의료사고를 겪게 되었고, 그로 인해 뇌성마비라는 병명의 지체 1급 장애인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어렸을 때는 이 장애가 약을 먹고 병원에 다니면 나을 수 있는 단순한 병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을 뒤로 한 채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또래 친구들과 판이하게 다른 유년 시절을 보내면서도, 일주일에 서 너 번씩 그야말로 악소리가 절로 나는 재활치료의 고통을 온 몸에 범벅 된 땀으로 묵묵히 감당하면서도 잠자리에 들 때면 고사리 같은 두 손을 꼭 모아 “치료 열심히 받을게요. 운동 열심히 할게요. 빨리 낫게 해 주세요.”라고 했던 누구에게 하는 지도 분명치 않은 기도의 이유가 되곤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렇게 내 마음 한 구석에 심겨진 희망의 싹을 가꿔가는 일도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초등학교에 입학을 하고 점점 철이 들면서 내게 있는 장애는 그저 단순한 병이 아니라 내가 평생 짊어져야 하는 나의 몫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러한 현실을 깨달은 후부터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나의 모습을 비관하며 매일매일 원망과 불평으로 물든 하루를 보내야만 했다. 무엇보다 학년이 올라갈수록 오르지 내가 장애를 가졌다는 그 이유만으로 같은 반 급우들로부터 오는 온갖 멸시와 조롱은 어린 내게 견딜 수 없는 치욕스러움을 안겨주곤 했다. 작은 행동 하나로, 작은 몸짓 하나로 모든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한 몸에 받아야 하는 내 자신이 사무치게 싫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덕에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깔깔깔, 깔깔깔.”
무남독녀 외동 딸. 유난히 손이 귀했던 집안에서 오랜 염원 끝에 태어난 아픈 손가락이었던만큼 부모님은 물론 일가친척들의 사랑을 한 몸에 독차지하며 자란 터라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하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 그 많던 웃음을 잃고 홀로 있기를 좋아하는 아이로 서서히 변해가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 한 거야?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왜 하필 내가 장애인으로 태어났어야 하는 거야?”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어디에도 명확한 해답이 없는 존재론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끊임없이 나 자신을 괴롭히면서.

그러던 어느 날. 집 앞 교회에서 나와 노방 전도를 하시는 목사님의 손에 이끌려 교회라는 곳에 처음 발을 딛게 되었다. 물론 처음에는 새로운 곳에 대한 호기심과 ‘한 번 가보고 재미없으면 말지 뭐’ 라는 단순한 생각이 더 깊이 자리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자 교회생활에 흥미를 느끼며 점점 신앙이 자라게 되었고, 무엇보다 찬양과 말씀, 그리고 기도를 통해 육신의 장애로 인해 겪었던 지난날의 아픔들이 조금씩 치유되는 것을 경험하기 시작했다.
“소나야 많이 힘들었지? 근데 내가 너 사랑한다.”
내가 놀림 받고 아파할 때 가장 가까이 나와 함께 하셨던 주님. 값없이 쏟아부어주고 계시는, 고통을 통해 당신의 마음을 느끼게 하시는 하나님의 참 사랑을 몸으로 마음으로 느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마침내 지식으로만 알던 하나님이 아닌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자 무척이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를 이곳에 이 모습으로 보내심 또한 모두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인 줄 아오니 저들 마음에 있는 완악함이 사라지게 하시고,  저의 모습을 통하여 저들이 예수님을 알 수 있도록 해 주세요.”
여전히 조롱하고 멸시하는 친구들의 틈 사이에서도 더 이상 ‘아이들이 따돌리지 않고 그들과 가까워지게 해주세요.’라는 나만을 위한 기도가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기도를 하도록 허락하셨다.
물론 이렇게 기도를 했다고 해서 나를 놀리고 조롱하던 아이들의 태도가 하루아침에 확 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때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하는 기도에도 점점 더 악날해지는 상황, 매일 만나게 되는 세상의 차별과 그로 인해 겪어야 하는 고통들에 “하나님! 이러시면 안 되잖아요” 원망의 기도를 하기도 했고, 하나님을 외면하려 애써 멀리하려 무던히도 노력하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잠시잠깐 방황할 때도 여전히 그 자리에서 “소나야, 내가 너 기다릴게. 내가 너와 항상 함께 한단다.” 그 누구보다 나를 원하시던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나의 가장 연약한 부분을 통해 당신의 강함을 드러내시며 가장 힘들어했던 세상의 조롱과 멸시를 능히 이기는 법을 알려주셨던 하나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한 가지 이유를 또 한 번 명확히 알려주시며 여전히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또 한 번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총 9년의 학창시절을 보내는 동안, 웃음보다는 눈물을, 설렘과 기쁨보다는 두려움을 더 많이 간직한 채료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던 내게 고등학교 입학이란 그리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다.
‘또 어떤 무시무시한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달라진 신분만큼 더 크게 감당해야 할 앞으로의 일들로 단단히 뭉쳐진 커다란 돌덩이 하나가 마음 속 한 가운데에 뚝 떨어지는 기분이었으니까.

하지만 그 곳이 어디든 결코 나를 혼자 보내시지 않으시는 하나님. 나의 형편과 처지를 이미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번에도 너무나 정확히 응답하셨다. 이전까지의 학교생활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본인들과 다른 나의 장애를 인정하며, 나의 속도에 맞추어 함께 걸어가 줄 수 있는 무척이나 좋은 친구들과의 만남을 허락하신 것이다. 담임선생님 역시 마찬가지셨다.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고등학교 입학 전 중학교 때까지 나는  한 번도 소풍이나, 체육대회 등 학교 행사에 참석해 본 적이 없었다. 매번 행사 때가 되면 딱히 시키는 이가 없어도, 똑같은 녹음테이프라도 틀어놓은 듯 ‘너는 어차피 못하니까, 힘드니까.’라며 함께 하기보다 빠지기를 권하셨던 담임선생님들의 말씀이 있던 까닭이었다.

그런데 고등학교 입학 후 만난 담임선생님만큼은 아니었다. 선생님께서는 나를 ‘장애인’이 아닌 ‘우리 반 학생’으로 단 한 순간도 내 장애를 이유로 일말의 차별을 두지 않으시는 분이었고, 되려 내가 내 장애를 이유로 못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할 때면 “뭐가 문제냐, 아무 문제 될 거 없다.”라는 단호한 말씀으로 뭐든지 함께 할 수 있도록 해 주시는 분이었다.

그 덕에 청소도, 심부름도, 그리고 잘못한 일이 있으면 벌을 받는 것까지. 적어도 하루 중 반나절, 학교에 있는 시간만큼은 ‘장애인’이 아닌 일개 학생일 뿐이었고, 더 나아가 체육대회, 사생대회, 수학여행 등 학교생활 10년 동안 결코 범접해서는 안 될 다른 이들의 이야기로만 여겨졌던 학교의 대외적인 활동들까지 모두 섭렵하며 그야말로 '시간이 아깝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즐거운 학교생활을 만끽하던 어느 날. 문득 머릿속을 번쩍 스쳐가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앞으로 내 후대에도 1명이든 100명이든 1000명이든 자신이 원하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는 장애인들이 있을 텐데 그들도 나처럼 자신의 장애를 앞세우며 할 수 없다는 생각과 함께 소외되고 위축된 삶을 살아가면 어떡하지?’

그 생각을 하자 절레절레 절로 도리질이 쳐졌다. 앞으로 몇 명이 됐든 후대의 장애인들은 조금 더 편한 세상에서 자신의 장애가 ‘틀림’이 아닌 ‘다름’이 되는 세상에서 당당히 자신의 권리를 누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고, 그 기반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차이’가 ‘차별’이 되지 않는 세상이 만들어져야 할 터.
내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우리 담임선생님이 나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나 역시 후대의 장애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희망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불붙듯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때, 마음 저 깊은 곳에서부터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알겠니? 그래서 내가 너 선택한 거야. 네 잘못이 아니야. 다만 내가 너를 무척 사랑하기 때문이야.”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쏟아졌다.
“하나님, 저 잘 할 수 있을까요? 정말 그런 사람 될 수 있을까요?” 끊임없이 질문하며 하던 기도에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지키리라.” 하나님께서도 역시 사람과 상황을 통해, 때로는 나의 마음에 직접 그렇게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걸로도 모자라 원하던 대학, 원하던 학과에 합격해 총 8학기 중 6학기를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하다가 최우수 졸업자라는 영예를 안을 수 있도록 가장 최고의 것으로 먹이고 입히신 하나님.

물론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서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될 또 다른 어려움에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 눈물을 흘릴 때가 무척이나 많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이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장래에도 여전히 인도하실 나의 아버지가 계시기에 세상의 어떠한 두려움도 이길 수 있는 믿음. 이게 바로 그리스도인의 특권이 아닐까? 

늘 나의 최선이 무엇인지 가장 정확히 아시며 모든 필요를 정확히 아시는 하나님. 앞으로 닥칠 인생의 연약함에도 방황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나의 가장 연약할 때에 그 연약함을 가지고 정확하게 일하셨던 청춘의 때를 기억하며 나의 사명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며 하나님의 참 사람으로 사는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우리 주님 부르시는 그날 그 시점까지.
내 삶의 이유, 내 삶의 전부, 내 삶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주님! 주님을 사랑합니다. ​ 

     147. [2015] 이상권-밖으로 나오라 반드시 그곳엔 빛이 있다
     145. [2015] 이충묵-나는 행복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