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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심일영-거위의 꿈 프린트   
heemang  Email [2016-05-04 15:17:47]  HIT : 65  

나는 어릴 적이나 지금이나 꿈이 아주 많았다. 7살부터 16살 때까지는 나의 어머니처럼 좋은 엄마 착한 엄마가 되고 싶었고, 17살이 되는 무렵부터 지금 현재까지 배우나 의사, 도자기 만드는 사람 또는 옷이나 엑세사리 만드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래서 난 하느님께 내 목숨은 단축해도 좋으니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게 해달라고 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난 잘 알고 있다. 이것들은 꿈일 뿐 현실이 될 순 없다는 것을... 그리고 하느님에게 기도를 드려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그리고 내가 이 세상을 어느 정도로 살아 왔음 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왜 이렇게 태어나야만 했고 왜 이렇게 남들보다 특별하게 자라야만 했는지를... 그리고 나는 지금 가끔씩 내 부모님이 내 옆에서 주무시고 계시거나 TV를 보실 때 부모님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이 분들도 많이 늙으셨다는 것을... 이 분들이 전생에 뭘 그렇게 잘못을 했길래 지금 내 나이보다 어렸을 때 나 같이 몸이 불편한 자식을 만나 30년 동안 그리고  현재까지도 나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시고 사셔야 하는 것일까를. 난 왜 하필 이 집에서 태어나 이 분들을 만난 걸까? 이런 생각을 하면 매번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난 머리는 좋지 않지만 기억력은 좋아 기억하지 않아도 될 걸 다 기억을 한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많이 받으면서 살아왔고 나이가 들어 지금도 그건 마찬가지다. 그 중 내가 제일 상처 받았던 건 나의 친할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셨다. 우리 친할아버지 친할머니는 내가 이 세상에 나올 때부터 날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아들이 아니라 좋아하지 않으셨고 나중에는 내가 몸이 불편하다는 걸 아시고 나의 어머니한테 우리 집안엔 이런 애가 없었다며 나의 어머니를 매번 구박 하셨고 내가 할머니네를 가면 나는 쳐다보지도 않으셨고 내 동생과 내 언니만 챙겨주셨다. 그래서 난 어릴 때부터 친할머니네를 가기 싫어했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밉고 싫어서가 아니라 이런 자식을 낳고 싶어서 낳은 것도 아닌 나의 어머니한테나 이런 병 신 같은 몸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닌 나한테 안 좋은 말씀을 한 마디씩 하시니까 그런 말들을 듣기 싫어서 가기 싫었다. 물론 나도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 마음을 이해하고 죄송하게 생각한다. 어떤 부모가 자기 자식이 고생하는데 아무리 손녀라고 해도 예뻐하겠는가. 그래서 난 할머니 할아버지를 미워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그때 단 하루만 빼고. 내 나이 6살인가 7살에 아니 그 보다 더 어리거나 더 많은 나이 였을 수도 있다. 난 어릴적에 나에 부모님을 따라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는 친할머니네를 간 거 같다. 그 날도 어김없이 난 대전 할머니네를 갔고 나의 할아버지께서는 어디 가셔서 약주를 쫌 드시고  집으로 돌아오셔서는 안방에 누워 있는 내 옆에 앉으셔서 날 안아주시더니 무표정으로 날 보시고 나한테도 우리 엄마한테도 평생 지워지지 않을 상처가 될 말씀을 하셨다. 할아버지께서 날 안고 그런 말씀을 하시기 전까지 어린 마음에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우와~ 우리 언니랑 남동생만 챙겨 주시고 좋아해 주시던 할아버지께서 이제서야 나를 조금이라도 좋아해 주시려나 보다. 라고 생각하고는 속으로 무지하게 좋았고 감사한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술이 많이 취하셔서 날 안아 주시고 계신 할아버지께서 나한테 너 아빠 엄마 없이 살 수 있냐고 하시고는 작은 방에서 나갈 준비를 하시는 나의 부모님들을 불러 앉히셔서 내가 돈을 줄 테니 일영이 얘를 시설에 갖다 놓자고 하셨다. 난 그제서야 할아버지가 날 왜 안아주셨는지를 알게 되었고 어린나이였지만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받고 나서야 친할머니와 친할아버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걷자. 걸어서 어른들에게  걷는 나에 모습을 보여 드리면서 부모님을 고생 시켜 드려서 죄송하고 앞으로는 제가 우리 부모님한테 잘해서 공부도 열심히 하고 돈도 많이 벌고 돈 많이 벌어 우리 부모님한테 효도 많이 할게요. 라고 다짐하며 걸어 다니는 내 모습을 매일매일 상상하고 이겨내기 위해서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그건 단지 나의 이룰 수 없는 꿈이 었을뿐. 그렇게 난 29년이라는 세월 동안 학교도 아예 못 다녔고 학교를 못 다니다 보니 공부도 하나도 배우지 못 했다. 10대 초반에 글씨는 어떻게든 배워야겠다 라고 생각이 들어서 친언니한테 조금만 알려달라고 해 갖고 배워서 가나다라 정도만 익혀 나머진 TV에서 배웠다. 그 정도로 난 하고 싶은 공부도 남들이 입고 다니던 교복도 못 입어봤다. 그 뿐만 아니라 26년 동안 난 머리 하나를 내 마음대로 못 길러 봤다. 그래서 내가 지금 머리를 더 자르기 싫어하는 것 같다. 그렇게 밖에도 못 나가고 살다가 2년 전에 아는 언니를 통해 활동보조인이 있는 걸 알게 되었고 부모님이 못 탄다고 했던 휠체어도 싸워서 맞췄고 지금은 그 휠체어를 타고 활동보조인 선생님들이 도와주셔서 가끔씩 바깥으로 나가 내가 여태 하고 싶은 걸 하나씩 하게 된다. 그 전에는 외출하는 것은 엄두도 못 냈던 나였는데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바닥에 누워서 천장만 바라보던 나였기에 눈만 뜨면 내 삶을 비난하며 살아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거의 모두 공감할 거다. 그렇게 긍정적인 사람이 아닌 이상 몸이 불편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우울증이 심하다는 것을.. 어쩌면 휠체어가 없어서 지금까지 외출 한 번 못해본 나를 여전히 원망하면서 아버지가 만들어 주시는 긴 나무 막대기를 입에 물고 노트북 자판을 치면서 먹여주는 밥을 먹고 그냥저냥 죽기만을 기다리며 살아 갔을런지도 모르겠다. 내가 매일 눈만 뜨면 했던 생각이 있다. 지금 이런 꼴로 왜 살고 있는 거지? 이런 병 신 같은 몸으로 살아 봤자 사람들 고생이나 시키고 365일을 밖에도 못 나가고 평생을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나 제대로 못 하는데 이러고 살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습관처럼 하면서 입에 물고 있는 나무 막대기를 목구멍까지 넣어 자살 시도를 해버릴까 하는 생각이 수도 없이 들고 내 운명을 그리고 내 일생을 몇 번이고 다시 되돌려 버리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수백 번 수만 번 내 머릿속을 스쳐간다. 몇 년 전 나는 진짜 이런 몸으로 살기 싫어 집에 식구들이 아무도 없었을 때 노트북을 켜 입에 막대기를 물고 드라마 극본을 쓰다 부모님한테나 형제들한테는 미안 하지만 생각 하면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물고 있던 막대기를 입 안 목구멍까지 넣었던 적이 있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우울하고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다는 생각에 늘 힘들고 버거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렇게 자살시도를 해오면서 누군가에 말처럼 내 목숨이지만 정말이지 내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자살이라는 생각조차 나에겐 사치라는 생각에 만약 내가 지금 손이라도 쓴다면 공평하지 않은 이 세상, 더러운 이 세상을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텐데 라는 생각들이 수도 없이 내 머릿속에서 빙빙 맴돌아 나를 짓누르고 있었다. 사는 게 죽는 것 보다 더 괴롭다는걸 수시로 생각해 오면서 늘 나를 절망으로 밀어 넣었던 건 사람들에 시선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이었다. 어떻게 자살에 성공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한 번에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늘 고민하고 기도했다. 제대로 된 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세상을 떠나는 건 두렵지 않았으니깐.. 난 바람처럼, 공기처럼 그렇게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제발 날 이젠 데려가 달라고 하느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누가 하느님이 공평하시다고 했던가..난 하느님이 만든 유일한 실수 였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중이라도 나에게 기회가 찾아온다면 나를 도와주고 있는 장애인자립센터에서 일을 배워보고 싶기도 하다. 센터에서 일 하고 계신 팀장님을 오래 안 건 아니지만 지금껏 나를 많이 신경 써주시고 많이 도와주시는 것을 보니 이 직업도 참 보람 있는 직업 같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또한 나도 내가 직접 번 돈으로 스스로 자립해서 경제적으로 부모님한테 도움도 많이 드리고 나도 나가서 짠순이 노름도 안 하면서 살고 싶기에. 그리고 난 지금 방송 작가를 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난 그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잘된다는 보장도 없기에 별로 기대하진 않지만 죽을 힘을 다해 할 거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간 심일영이라는 작가도 탄생하겠지. 무엇보다 난 방송 작가로 성공해야 하고 세상 사람들한테 기필코 보여주고 싶고 반드시 보여주겠다. 난 비록 몸 불편한 사람으로 태어나 이렇게 살고 있지만 장애인 작가가 아닌 김수현, 노희경 작가들처럼 유명하고 드라마를 잘 쓰는 작가가 되는 걸. 내가 여태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항상 느끼고 있는 점이 있는데 대가없는 고통은 없다는 거다. 그래서 난 앞으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내 나이도 이제 어느덧 계란 한판이 되었고 30이라는 나이가 적다면 적은 나이고 많다면 또 많은 나이인 것 같다. 그리고 난 지금 이 나이에 쪽팔리지만 초등검정고시를 볼려고 한다. 어릴 때 못한 공부를 이제서야 하려니 머리가 잘 돌아가진 않지만 늦게 시작하고 또 하고 싶었던 공부이기에 할려면 최선을 다해 끝까지 해볼 생각이고 나한텐 포기라는 단어가 없기에 한 발 한 발 앞으로 가려고 한다. 2015년 올해에 내 목표는 초등과 중등 검정고시를 봐서 합격 하는 거고 2월 달부터 사람들이랑 같이 하는 일어공부도 열심히 해보고 일어를 어느 정도로 하는 사람으로 발전하고 싶다. 또한  드라마 공모가 있으면 한 번이든 두 번이든 내보기도 하고 올해부터 새로 들어간 장편 드라마도 될 수 있는 한 11회나 12회 까지 쓰는 게 목표 아닌 목표다. 이제는 어린 시절 늘상 하느님께 기도하고 바라고 원했던 소망들을.. 정작 그때는 하느님이 날 버렸다고 생각하며 좌절했던 시간들을 다시 되짚어 보면서 하느님이 날 버린 게 아니라 내가 하느님에게 선택받아 아주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인정해 보려 한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일과 원했던 일들이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어쩜 하느님께서 그때 내가 이겨낼 수 있도록 날 시험에 들게 하셨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느님은 나에게 하느님을 대신해서 좋은 사람들을 보내 주셨고 많은 은혜를 주셨다. 그리고 지금도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니 더 이상 무서울 것은 없다. 하느님이라는 든든한 빽이 있기에 나는 그 어떤 순간도 두렵지 않다. 그래서 이제 나도 다시 하느님을 믿어 보고 의지 할려고 한다. 또 하느님께 살아가면서 하나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다. 만약 다음 세상이 정말 있고 다음 세상에 절 또 다시 태어나게 해주신다면 몸이 불편한 사람이 아닌 건강한 사람으로 태어나 지금 나 때문에 고생하고 계신 나의 부모님의 아빠나 엄마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그리고 나는 지금 다짐하고 다짐한다. 어떤 일을 하든 일단 부딪혀 보고 한 발 한 발 가보자고. 그럼 나한테도 언젠가는  좋은 기회가 올 거고 좋은 날이 올 거라고.......
음~ 나는 29년이라는 세월동안 내가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가보지 못한 체 그렇게 내 스스로에게 갇혀 살다가 처음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이후 우연히 장애인자립생활센터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일하는 분들이 나같이 집에만 있는 재가 장애인들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도 알게 되었다. 난 이분들의 도움을 받아 생전 처음으로 휠체어도 맞추게 되고  휠체어를 타면서 부터 내가 가고 싶었던 노래방, 영화관, 커피숍, 술집, 옷가게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세상과 마주하게 되었다. 가족들과 꽃구경도 가고 아파서 병원 조차 가볼 생각도 못해본 내가 휠체어가 생기고 나서 부터는 활동보조인 선생님과 병원도 다녀 보고 내가 나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헤어스타일에 변화를 주려고 미용실에 가서 난생 처음 남들이 다 하는 파마라는 것도 해봤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만지면서 한편으로는 나 때문에 많이 번거로웠을 미용실 사장님과 활보 선생님께 죄송했지만 기분은 날아갈듯이 좋았다. 나 같은 사람도 내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다른 사람들처럼 해볼 수 있다는 사실에 하루하루가 즐겁고 설레였다. 그리고 몇 달 전에는 검정고시에 필요한 교재를 구입하러 서울 중심가에 있는 큰 서점에 가기 위해서 생전 처음으로 지하철이란 것도 처음 타보게 되었다. 남들이 다 하는 일상적인 생활들이 나에겐 모두가 새롭고 낯설고 또한 벅차기만 했다. 늘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했던 내가 누군가를 위해서 직접 선물을 고르고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었다. 평소 나를 잘 챙겨주시던 센터 소장님에 생신 때 내가 직접 고른 케이크를 선물해 드리면서 이러한 소소한 일상에 작은 기적을 맛 본 것 같아 너무 기뻤다. 화장품을 사서 화장을 하고 은행을 가서 내 이름으로 된 통장을 만들고 부모님께 직접 옷을 선물해 드리면 부모님께서는 나보다 몇 배 더 감격해 하시고 기특해 하셨다. 하나밖에 없는 조카에 돌잔치에도 참석하지 못했지만 나중에 조카를 위해서 조카에게 줄 간식과 선물을 사주면서 내가 이모 노릇을 조금이라도 한 것 같아 기쁘기도 했고 많이 어린 조카지만 이모에 진심을 알아주는 것 같아서 많이 조았던 것 같다. 비록 나는 혼자서 이 모든 걸 할 수 없어 활동보조인 선생님들의 손을 빌리게 되지만 이것 또한 내가 앞으로 살아가기 위한 한 방법이라고 생각하기에 지금은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다. 내가 항상 그래왔단 것처럼 희망 없이 살아온 반복되는 나의 일상에 장애인자립센터는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센터에 계시는 팀장님을 통해서 자립은 이런 거다. 라는 걸 알게 되었고 많은 배려를 해주신 덕에 센터에서 일 하시는 직원 분들과 2박3일 이라는 긴 여행도 다녀오게 되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만들었던 그때의 추억은 너무 설레고 소중하게만 느껴졌고 나만의 생각일런지 모르겠지만 여행을 가서 다른 분들과 친해지고 갇혀있던 내 마음을 많이 보여드리고 속 시원히 얘기할 수 있어 답답했던 마음이 조금은 차분해졌다. 이후에도 나에게는 점점 다른 것들을 경험하고 싶고 이루고 싶은 소망들이 하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예전에 내가 양동근,이나영이라는 배우들이 주연으로 나온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 를 봤는데 거기서 무술 감독 역에 정두홍이라는 배우한테 반했다고 해야 할지... 정두홍이라는 배우에 무술 하는 모습이 어찌나 그리 멋져 보였는지. 한 번 쯤은 직접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가능하다면 간단한 무술 정도는 배워서 나중에 내가 드라마라도 쓰게 된다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고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몸이지만 나중엔 살사 댄스 학원 같은 데 가서 춤 동작 몇 개라도 배워 오고 싶은 마음도 있다. 어릴 적부터 재즈댄스에 관심이 많았고 내 스스로가 춤을 추지는 못 하지만 내가 쓰는 내 글에서는 얼마든지 표현할 수가 있으니깐..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면서 그리고 많은걸 누리면서 나에겐 아주 특별한 소망이 생겼다. 비록 완벽히 건강한 몸은 아니지만 장기 기능을 하는 일이다. 어차피 죽으면 다 썩을 몸인데 마지막 가는 길에 누구에게라도 도움이 되고 희망이 된다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나중이라도 나에게 기회가 찾아온다면 나를 도와주고 있는 장애인자립센터에서 일을 배워보고 싶기도 하다. 센터에서 일 하고 계신 팀장님을 오래 안 건 아니지만 지금껏 나를 많이 신경 써주시고 많이 도와주시는 것을 보니 이 직업도 참 보람 있는 직업 같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또한 나도 내가 직접 번 돈으로 스스로 자립해서 경제적으로 부모님한테 도움도 많이 드리고 나도 나가서 짠순이 노름도 안 하면서 살고 싶기에. 그리고 난 지금 방송 작가를 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난 그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잘된다는 보장도 없기에 별로 기대하진 않지만 죽을 힘을 다해 할 거고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간 심일영이라는 작가도 탄생하겠지. 무엇보다 난 방송 작가로 성공해야 하고 세상 사람들한테 기필코 보여주고 싶고 반드시 보여주겠다. 난 비록 몸 불편한 사람으로 태어나 이렇게 살고 있지만 장애인 작가가 아닌 김수현, 노희경 작가들처럼 유명하고 드라마를 잘 쓰는 작가가 되는 걸. 내가 여태 이 세상을 살아오면서 항상 느끼고 있는 점이 있는데 대가없는 고통은 없다는 거다. 그래서 난 앞으로 남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내 나이도 이제 어느덧 계란 한판이 되었고 30이라는 나이가 적다면 적은 나이고 많다면 또 많은 나이인 것 같다. 그리고 난 지금 이 나이에 쪽팔리지만 초등검정고시를 볼려고 한다. 어릴 때 못한 공부를 이제서야 하려니 머리가 잘 돌아가진 않지만 늦게 시작하고 또 하고 싶었던 공부이기에 할려면 최선을 다해 끝까지 해볼 생각이고 나한텐 포기라는 단어가 없기에 한 발 한 발 앞으로 가려고 한다. 2015년 올해에 내 목표는 초등과 중등 검정고시를 봐서 합격 하는 거고 2월 달부터 사람들이랑 같이 하는 일어공부도 열심히 해보고 일어를 어느 정도로 하는 사람으로 발전하고 싶다. 또한  드라마 공모가 있으면 한 번이든 두 번이든 내보기도 하고 올해부터 새로 들어간 장편 드라마도 될 수 있는 한 11회나 12회 까지 쓰는 게 목표 아닌 목표다. 이제는 어린 시절 늘상 하느님께 기도하고 바라고 원했던 소망들을.. 정작 그때는 하느님이 날 버렸다고 생각하며 좌절했던 시간들을 다시 되짚어 보면서 하느님이 날 버린 게 아니라 내가 하느님에게 선택받아 아주 특별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조금씩 인정해 보려 한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일과 원했던 일들이 조금씩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 어쩜 하느님께서 그때 내가 이겨낼 수 있도록 날 시험에 들게 하셨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느님은 나에게 하느님을 대신해서 좋은 사람들을 보내 주셨고 많은 은혜를 주셨다. 그리고 지금도 언제나 나와 함께 계시니 더 이상 무서울 것은 없다. 하느님이라는 든든한 빽이 있기에 나는 그 어떤 순간도 두렵지 않다. 그래서 이제 나도 다시 하느님을 믿어 보고 의지 할려고 한다. 또 하느님께 살아가면서 하나만 부탁드리고 싶은 게 있다. 만약 다음 세상이 정말 있고 다음 세상에 절 또 다시 태어나게 해주신다면 몸이 불편한 사람이 아닌 건강한 사람으로 태어나 지금 나 때문에 고생하고 계신 나의 부모님의 아빠나 엄마로 태어나게 해달라고. 그리고 나는 지금 다짐하고 다짐한다. 어떤 일을 하든 일단 부딪혀 보고 한 발 한 발 가보자고. 그럼 나한테도 언젠가는  좋은 기회가 올 거고 좋은 날이 올 거라고....... ​ 

     153. [2015] 신성일-장애의 아픔
     151. [2015] 오상주-고난의 뒤를 돌아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