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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배자경-장애인의 애환 프린트   
heemang  Email [2016-05-04 15:19:00]  HIT : 42  

장애인의 애환

양떼들 곁으로 데리고 가셨네
 문제는 학교를 졸업한 이후부터였지. 취업할 곳은 안마사로 일하는 곳뿐이었는데 그 환경은 너무나 열악했었지. 우여곡절 끝에 나는 안마 시술소에서 첫 일을 시작하고 사회 경험을 쌓았지만 고생과 어려움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어. 일년에도 몇 번씩 호텔과 안마시술소를 바꾸어가며 직장을 옮겨 다녀야 했고 시각장애인들의 이동권은 너무나 열악해서 어려움이 많았었지. 엄마는 동생들 뒷바라지 하시느라 내게는 어릴 적처럼 보살펴 줄 수가 없어서 내 밑에 동생들이 다섯씩이나 되었는데 출가도 시켜야 하고 해산 바라지도 해야 하고 손자들도 가끔씩 보살펴 주셔야 하셨으니까 그러던 중 내게는 문제가 또 하나 생기기 시작했지. 오른쪽 귓속에 자꾸 물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마침내 양쪽 귀가 다 잘 안 들리게 되었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가까운 이비인후과에서 물이 생길 때마다 귓속에 물만 닦아 내었는데 이런 끔찍한 일이 생기고야 말았어. 청력 검사를 마치고 나서 나는 한없이 울고 또 울었지. 그러나 아무리 대성통곡 해도 이미 때는 늦었어. 보청기를 했지만 적응하는 기간이 너무나도 길었고, 중복장애인으로 이 세상에 적응하기엔 더욱더 힘들었어. 그나마 조금씩 다니던 직장마저도 다니지 못하게 되었고 조금 있던 돈도 다 없어지게 되었지. 부모님은 더 연로하셔서 내 외출을 도와 주시기가 어렵게 되었고 나는 종일토록 밤과 친구하며 지내게 되었지. 그러던 중 아버지는 치매를 앓으시게 되었고 엄마도 당뇨 합병증으로 시달리게 되셔서 참으로 나에게는 긴 암흑과 같은 시절이었지. 그러던 중 2006년도 4월부터 안협 경기 지부에서 안마 봉사 단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도청에서 지원금을 조금 받아 약간의 보수도 생겨 용돈도 쓸 수 있었습니다. 정말 나에게는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그 일을 해 보니 어려운 점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안마 봉사 한 번 하기 위해 집에서 너무 먼 곳까지 이동해야만 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차를 세 번씩이나 바꿔 타고 오가는 시간만도 여섯 시간 봉사하는 시간까지 꼬박 10시간씩 걸려야 봉사 한 번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고 새벽 6시에 집을 나서서 봉사할 장소까지 가야 하는 어려움도 감수해야 했습니다. 차량은 대부분 지원되지 않았고 주로 전철로 이동해야 했는데 목적지까지 전철이 닿지 않는 곳에는 중간에서 내려서 버스까지 타고 다녀야 했습니다. 독립 보행도 못하고 또 여자 혼자의 몸으로 어려운 점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또, 더욱 어려운 일은 축제가 많은 봄 가을에는 토요일 주일 공휴일까지 일을 해야 했고 안협의 규정은 너무 까다로웠습니다. 보수는 한 달에 1~20만 원이 고작이었습니다. 참으로 어렵고 험한 길이었지만 시청각 중복 장애를 가진 나로서는 딱히 할 일도 없었으므로 오래도록 인내하면 9년여 동안 그 일을 하고 올 한 해는 쉬면서 글도 좀 쓰며 자유롭게 살아 보려 합니다. 사실 안마 봉사를 하는 동안 나는 복지관에서 실시하는 나들이도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개인적으로는 나들이 한 번 어려웠던 터라 복지관에서 실시하는 나들이에는 같이 가고 싶었지만 그때마다 안마 봉사가 걸려 갈 수가 없었습니다. 한 달에 몇 번밖에 안 하는 봉사가 왜 그리도 사람을 얽매는지 이렇게도 어려운 일을 내년에도 해야 하는지, 많이 고민이 됩니다. 사실 약간의 보수라도 받으면서 봉사라는 말을 하기가 부끄럽지만 안협에서 봉사라고 하니까 나도 봉사라고 말하게 됩니다.
 그러던 중 국가에서 활동 보조인 제도를 시행하게 되었고 나에게는 조금 형편이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나를 정말 살리는 제도는 아니었습니다. 활동 보조인들이 안내를 잘못해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다쳤고 지하철에 발이 빠지는 일까지 생겨 목숨까지 잃을 뻔 한 적도 있었습니다. 발목을 심하게 삐고 어깨뼈에 금이 가고 다친 후유증으로 무릎 퇴행성 관절이 오고 활동 보조인과 다니면서 몇 번이고 넘어지고 부딪히기를 반복했지. 활동 보조와 다니는 것, 너무나 무섭지만 지금 내 형편으로는 활동 보조 외에는 내 외출을 도와 줄 사람이 없으니 어찌 하랴. 부모님과 같이 다닐 때에는 한 번도 다쳐 본 적이 없는데 하고 생각하니 긴 한숨이 절로 나오는구나. 지금 82세 된 엄마가 아직 살아 있어서 나를 보살펴 주시고 계시지만 엄마마저 안 계시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그런 생각만 하면 내 마음이 너무 슬퍼지고 근심만 잔뜩 생기는구나. 정상인들도 살아가기 힘든 이 세상에서 눈도 안 보이고 귀까지 안 들리는데 중복 장애인이라는 짐이 내게는 너무 무겁구나. 앞으로 혼자서 살아가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도다. 내게는 세 가지의 소원이 있었지. 첫 번째 소원은 부모님 살아 계실 때 눈을 떠서 부모님 얼굴을 보는 것이었지만 지금 아버지는 2년 전에 돌아가셨고, 엄마 또한 연로하시고 많은 합병증으로 시달리고 계시니 그 소원 이루어지기 힘든 것 같고, 두 번째 소원은 부모님보다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는 것이지만 이 소원 역시 이루어지기 힘든 소원이리라. 세 번째 소원은 내가 건강이 나빠지기 전에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인데 자는 잠에 조용히 하늘나라로 가는 것인데 이 소원은 이루어 질는지.. 부모님 노년에 합병증으로 고생을 하시는 걸 보니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네. 지금 나 역시 아주 건강치는 못한데 나중에 정말 건간이 나빠지면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는 걱정이 앞서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죠. 엄마는 지금도 합병증으로 인해 몹시 괴로워 하시고 드시는 것도 마음대로 못 드시고 편찮으셔도 필요한 약도 마음대로 드시지 못하신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해 볼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마음만 아플 뿐이랍니다. 부모님들 너무나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딸 여섯 다 기르시고 장애인 딸까지 두셨으니 그 고생 오죽하셨겠습니까. 세월은 빠르게 흘러 내 나이 어느덧 56세가 되었는데 앞으로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문득 걱정이 듭니다.
 걱정한다고 해서 단 한 가지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 걱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겠지요. 모든 근심, 걱정 하나님께 다 맡기고 희망찬 내일을 설계하며 열심히 기도하며 주님 잘 섬기고 살아 가렵니다. 그렇게 살다 보면 하나님께서 좋은 길을 열어 주시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2014년도 11월부터 내 생활에 작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영광 모바일 점자 도서관과 함께 김유정 문학관을 가셨는데 그곳에서 3행시나 5행시 짓기를 했습니다. 나는 ‘장미원’이라는 3행시를 썼는데 작가님께서 정말 시가 좋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 후부터 부족하나마 시를 쓰게 되었고, 짧은 기간 동안 쓴 시가 벌써 100편이 넘습니다. 처음에는 아무런 준비도 없이 시를 썼지만 쓰다 보니 이것 저것 필요한 것들도 참 많았습니다. 지금 쓰는 수기도 시를 쓰다가 우연히 쓰게 되었고, 써 놓고 나니 수기 공모 소식을 듣게 되어 이렇게 글을 올려 봅니다.


나는 길 잃은 양

나는 주의 어린 양
그 목자 소리 싫어서
내 맘대로 곁길로 갔었네

곁길로 가다가
험한 산길 가시밭길 만났네

무섭고 떨리는 마음으로
목자를 찾아 헤맸네

찾아도 찾아도
만날 수 없었네

가시에 찔리며
넘어지고 쓰러지며
애타게 목자를 찾았네
찾아도 찾아도
그 목자 보이지 않네

두려운 마음으로
나는 소리쳐
목자를 불렀네

불러도 불러도
목자의 음성
들리지 않네

무서운 마음으로
목자를 찾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네

내 온 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네

너무나 아프고 힘들어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
정신 없이 울어 버렸네

바로 그때 그 목자 날 부르시는 음성
멀리서 들리네

나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큰 소리로 대답했네

그러나 너무 멀어 보이지는 않네
나는 목자 음성 따라 가보려고 했지만

지치고 힘든 몸 움직일 수가 없네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네

한참 동안 날 찾아 헤매시던 그 목자
날 찾으셨네
목자는 날 찾느라 온 몸 피와 땀
상처투성이가 되셨네

목자는 못 박힌,
피 묻은 손으로
날 어루만지셨네

난 어린아이처럼
그만 엉엉 울고 말았네

목자는 피 묻은 손으로
날 일으키시고
상처 입은 몸으로
날 꼭 껴안아 주셨네

나는 목자의 품에서
어린아이처럼 마냥 울었네

목자도 나와 함께
기쁨의 눈물 흘리시네

부드러운 손길로 내 눈물
닦아 주셨네

지치고 힘들어 꼼짝할 수 없는
그 목자 친히 품에 안으시고
양떼들 곁으로 데리고 가셨네 ​ 

     157. [2015] 대가족 속의 미운 오리새끼 한 마리처럼 (이동석)
     155. [2015] 서정임-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