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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대가족 속의 미운 오리새끼 한 마리처럼 (이동석) 프린트   
heemang  Email [2016-05-04 15:19:16]  HIT : 32  

희망방송 개국기념 장애인수기 및 간증수기

소 주제 :
미운 오리에서 하얀 백조 한 마리로 탄생 
    이 동 석
옛날 텔레비전에서 방영 되었던, 동화가 생각납니다. 하얀 백조속의 검은 미운 오리새끼 한 마리의 이야기가 지금 내 마음속으로 파고듭니다. 저도 세상에 태어날 때는 어느 누구보다도 더 축복을 받으면서 태어나서니라 가장 풍성한 수확의 계절에 태어났지만, 뭐 그리 세상을 빨리 보고 싶었는지? 7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어머님의 배속에서 남들이 말하는 미숙아요 칠삭둥이로 힘겹게 태어났습니다. 저희집안은 할아버지 대부터 한 문중으로 이루어져 지금의 안동의 하회마을처럼 200가구가 동네를 이루어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아버님의 대에서 조금씩 산업사회가 되자 모두들 도시로, 도시로 나가서 지금은 50가구가 서로 의지하면서 살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는 형제가 많습니다. 돌아가신 할아버님의 간절한 유헌 덕분에 아버님, 어머님께서 8남매를 낳으셨습니다. 할아버님께서 회갑 되던 해에 아버지를 낳으셔서 그것도 독자로 그래서 조금은 무리였지만, 대가족을 이루어 살았습니다. 아버님께서는 어린 나이에 소년 가장이 되셔서 고생도 많이 하셨고, 무척 엄한 분이고, 고생을 많이 하시고 성장하셨는지? 정신력은 어느 누구라도 따라가기 어려울 만큼 강하십니다. 지금까지 남들에게 아쉬운 말씀도 없이 오직 오직 당신의 노동력과 끝없는 노력으로 저희 형제모두를 제대로 키우셨습니다. 어쩌면 저도 아버님의 영향으로 몸은 비록 불편하지만, 강한 정신력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형제들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동생들을 잘 보살펴주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시절에는 집안에 장애인이 있다면 숨기려는 생각과, 형제들은 조금은 챙피했으리라 더구나 식물인간 같은 중증장애인 동생이 집에 있으니까? 손가락하나 못 움직이는 동생을 업고 체구도 적은 누나가 매일같이 바람도 쉬어주고, 밥도 떠먹여주시고, 온 정성을 다하여 보살펴주시던 누님 제가 잘못된 길로 갈 가봐 늘 무서운 눈으로 바라보시던 형님들 저는 피가 물보다는 진하다는 말이 새삼 마음에 다가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에는 늘 복잡해서나, 결국 저 혼자였습니다. 아침 일찍 형과, 누나들은 학교로 가고, 부모님께서는 농사일을 하시러 들로 나가시면 텅 빈 방안에서 천장만 바라다보며 세월을 보내고 있을 때 큰 형님께서 사다주신 텔레비전과, 라디오를 벗 삼아 저도 글을 배웠습니다. 한자 한자를 배워나가면서 저도 정규 학교교육은 아니지만, 뭐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고, 여기서 삶을 포기하면 그동안 보살펴주신 부모님, 형, 누님들께 보답할 길이 없겠구나, 싶어 저는 혼자서 방안에서 틈틈이 몸을 움직이는 연습을 줄기차게 한 결과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비록 지팡이에 의지하지만, 걸음도 걷게 되고, 모든 신변처리는 혼자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이하, 형제들의 각별한 보살핌이 있어 이루어냈던 결과였습니다. 제 나이도 스물 형제들은 모두 결혼 정 연기에 접어들었고, 제가 집에 있으면 형제들의 결혼에도 영향이 미칠 것 같고, 나중에 결국 부모님이하, 형제들에게 짐만 되겠구나 생각하고, 저는 과감히 집을 나와 30년 동안이나, 객지를 떠돌고 있습니다. 가끔씩 부모님이하, 보고픈 형제들을 만나지만, 그렇게 애타는 잔정이라고 할까 그저 내 부모님이요, 내 형제들이구나 하는 생각뿐 저는 비장애인도 마찬가지지만, 살아온 과정이 정말 힘겹고, 고통스러웠던 나날이었습니다. 저는 어느 누가 봐도 장애가 심한 편입니다. 하지만 이런 몸을 이끌고, 많은 경험과, 사회의 그늘진 현장에서 잔뼈가 굳었고,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일도 참고 견디면서 죽을 각오로 앞만 바라보고 달려왔습니다. 제가 수많았던 고통과, 아픔을 이겨내고 오뚝이처럼 살 수 있었던 것은 때론 모질정도로 냉정하고, 때론 더 엄하게 가르쳐주신 가족이 있어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신 부모님이 계셔서 흔들림 없이 올바른 길로 걸어온 것 같습니다. 솔직히 부모님 형제들에게는 평생 갚아도 못 갚을 고마움도 있고 자주 왕래가 없어 서운한 점도 많습니다. 늘 다른 형제들만 더 챙겨주는 어머님이 야속할 때도 많았지만 내 어머니요 내 형제들이기에 속으로 울곤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늘 말씀하셨죠? 형제들에게 짐도 되지 말고 피해를 주지 말라고 그래서 저는 일찍 자립생활을 죽기 살기로 나무토막과도 같은 몸으로 정든 고향을 떠나 갈구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저는 지금까지 전국방방곡곡을 돌며 죽을 고비도 수 없이 넘기면서 힘들게 살고 있습니다. 제가 고향을 떠나 객지생활한지도 30년이 되는군요. 제 마음과 달리 부모님과 형제들은 너가 이왕에 장애인으로 태어나서니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참으면서 살아가라고 장애인을 둔 가족들이 모조리 그런지 제가 이런 몸으로 노점과 직장생활 그리고 작은 사업을 하다가 실패했을 때 장애로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 때 나 몰라라 하는 가족이지만 그래도 피를 나눈 부모님요, 형제들이기에 혼자 눈물을 삼키며 참아내지 못할 어려움을 이겨나갈 때 다시 한 번 부모님과 형제들을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 큰 부담이 되겠지만, 다 익은 벼는 스스로 고개를 숙인다면서요.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시겠지만, 부모님이하 형제들이 아무리 잘살고 부자면 무슨 소용입니까? 저희 가족은 정말 대가족입니다. 저희 형제들은 크게 성공하거나, 출세하지는 못했지만 늘 화목하고 정말 알뜰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희 형제 모두는 부모님의 좋은 모습과 근면 성실함과 부지런함을 몸에 배어 있기에 자신들만의 노력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물론 몸이 불편한 저 또한 오직 비장애인들과 똑같이 경쟁하면서 피나는 노력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는 중입니다. 그립고 피를 나눈 형제들이 같은 서울하늘 아래 살고 있지만, 일 년에 한, 두번도 보기 어려운 얼굴입니다. 각자의 삶이 어려워서 아니면 장애인과, 비장애인과 격차 때문인지? 여러 부분에서 서운한 마음 들지만, 피를 나눈 형제이기에 더 사랑하며 우애 있게 지내고 싶으나, 제가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점점 멀어지는 가족들이기에 항상 현실적으로 판단하고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에 늘 웃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장애인의 몸으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고난과 수 많았던 눈물과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 몰려 올 때 늘 부모님과 형제들께서 힘과 용기를 주었고, 정신적인 지주가 되어주었기에 지금 당당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의 끝없는 자립의지와 주의 분들의 각별한 보살핌속에 저는 지금까지 성실과, 부지런함 그리고 오직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로 수 많았던 고통과 좌절 그리고 절망을 이겨내고 이제부터 새로운 희망을 노래를 불러볼까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아름다운 찬양을 제가 20년만의 공부를 다시 시작하여 일주일 후면 영등포고등학교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월이면 누구도 감히 상상 조차 못할 마치 꿈같은 일이 벌어질 것입니다. 나 자신도 믿기지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50이 가까운 나이에 신학대로 입학예정입니다. 늦은 나이에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7삭둥이로 태어나, 1 8년 동안  식물인간처럼 살다가 정말 기적처럼 30년 전부터 지금 이순간까지 온갖 고난과, 고통들을 슬기롭게 이겨냈듯이 앞으로 찬난한 미래를 꿈꾸며, 묵묵히 학업에 열중하여  장애인목회도 할수 있으면 도전하여 물고기를 잡아주는 어부가 아닌 미약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가르치는 선교사가 되어 복음도 전파하고, 예수님를 진정 본받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든든한 저의 후원자요 하나에서 열 가지 저의 손과 발이 되어주시는 활동보조인 선생님과 짜꿍이 되어 직장도 다니고 활발하게 사회활동도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형제들이 나 몰라라 하더라도 꿋꿋하게 당당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이 사회의 그늘진 곳에서 고통 받는 이웃과 함께 솔직히 저도 가정을 이루고 보니 마음이 있어도 못 할 때가 많아요. 저는 이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미운 오리새끼 한 마리에서 벗어나 화려하고, 멋있게 날개 짓하며, 창공을 나는 하얀 한 마리의 백조로 재탄생하렵니다. 저의 더 발전된 미래의 모습을 위하여 소중하고, 끈끈한 정으로 뭉친 사랑하는 가족의 품으로 달려가기 위해 지금까지 미운 오리새끼처럼 고통을 잘 참고 견뎌냈 것처럼 성공한 사람으로 한줌 부끄러움 없는 사회인이요, 한 사람의 장애인으로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것보다 더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게 살아갈렵니다. 미운 오리새끼가 아닌 창공을 훨훨 나는 하얀 한 마리의 백조처럼
요즘은 돈이 있어야 사람대접도 받을수도 형제들도 자주 왕래가 있다고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니 누구를 원망하고 미워할 수가 있겠습니까? 저도 하루빨리 여유 있게 돈을 벌어 부모님과 형제들과 모여 사랑을 나누며, 살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노력중입니다. 
서울시 양천구 신정7동 목동우성2차 아파트 101동7/15호
2015년 02월 06일  이 동 석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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