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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김진영-손은 나 혼자 잡은 것이 아니었다 프린트   
heemang  Email [2016-05-04 15:19:51]  HIT : 36  

제목: 손은 나 혼자 잡은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사는 방식이다.
  ‘영화관’
  아마 그렇게 표현되는 공간에서 그들은 온기없는 고철상자 안의 활력을 퍽이나 재미있게 구경중인 듯 하다. 그러나 갑작스럽게도 영상은 지지직 하는 물결을 화면에 그려내는가 싶더니 이내 까맣게 변해버리고 만다. 그럼에도 도깨비의 장난인지 화면 속에 나오는 인물들이 자아내리라 예상되는 소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
  영화를 감상하던 사람들의 표정은 칠흙같이 어두운 공간에서도 보일 만큼 당황스러움과 짜증으로 물들어간다. 아마 곧....
  "아니, 여보세요! 영화관에서 도대체 뭐하자는겁니까? 영상을 담은 필름의 중간지점부터 문제가 생겼다니요? 그럼 소리만 들으란겁니까?"
  예상대로 성난 항의가 파도처럼 밀어닥친다. 다들 불만을 얼굴에 가득 담은 모양으로 투덜투덜 상자 밖으로 향한다. 티켓값을 환불해준다는 말에 그나마 자리를 조용히 뜨는 것으로 수습된 듯하다.
  모두가 떠나간 깜깜한 영화관. 그 가운데 나는 여전히 앉아 있다. 필름 속의 영상이 끊긴 지점. 정확히 그곳에서부터 내 이야기는 펼쳐질 것이므로. 미처 다 넘겨보지 못한 뒷부분이 아쉽기는 하나 어차피 나는 이제 소리로 남은 이야기를 완성시켜야 한다.

  1
  10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어머니의 손을 잡고 올망졸망한 걸음을 옮기고 있다. 빵빵거리고 북적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는 모양인지 아이는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두리번거린다. 아이의 고개가 왼쪽으로 향할 때는 여성의 것으로 짐작되는 또각거리는 구두소리가 성큼 가깝게 오른쪽으로 향할 때는 길에서 뻥튀기를 팔고 있는지 ‘뻥이요!’하는 소리가 불쑥 가깝게 다가온다. 그러고보니 구수한 뻥튀기 냄새도 아이의 코로 후다닥 달려들어간다.
  "엄마, 이제 어디야?"
  "응. 이제 거의 다 왔어. 춥지?"
  아직 겨울은 아니지만 늦가을로 접어드는 듯 꽤나 성난 바람이 몰아치고 있어 어머니는 아이가 걱정된 모양이다. 발걸음을 멈추고 아이의 옷깃을 여미는 손길에는 온기가 가득하다.
  잠시 후. 그들은 약품내음이 가득한 진찰실에서 의사를 마주하고 앉았다. 의사의 맞은 편에는 아이가 그리고 그 곁을 어머니가 든든하게 지키고 서 있다. 그런데 어지간한 일이면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어머니의 마음이 동요되는 듯 목소리가 떨려나왔다.
  "그럼 더 이상 방법이 없는건가요? 외국으로 가더라도 새로운 기술은 없을까요?"   
  어머니의 애절한 어쩌면 아이마저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의사의 대답은 한없이 무겁기만 하다. 의사도 안타까웠는지 한숨으로 말머리를 훑어내린다.
  "하아.... 현재 기술로는 어렵습니다. 단지 더 이상 나빠지지 않게 현상 유지를 할 뿐이지요."
  그 소리에 어머니의 심정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내려앉았다. 애써 미안함과 원통함을 가득 담은 눈물을 억지로 삼켜보지만 아이는 어머니의 눈물을 눈치채고야 만다. 그리고 당장 자신이 앞으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슬픔보다 어머니를 속상하게 했다는 죄책감이 아이를 옥죄었다. 아니 아이는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 사실은 그 의미조차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아이가 아는 만큼의 무게로 애초에 무게라고 불리기에도 민망한 별 것 아닌 것으로 본인의 문제를 치부해버리고 만다. 아이의 뇌리에는 즐겨하던 스타크래프트며 축구며 학교에서 만나던 친구들이 불현듯 스쳐간다.
  "우리 애는 이제... 어떻게 해야 되나요? 선생님.... 정말 고쳐주실 수 없는건가요?"
  "최선을 다 했습니다만 정말 죄송합니다. 아이는 내보내고 말씀드릴까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이도 알아야 하는 것이니까 그냥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드리는 소견서를 가지고 동사무소에 가시면 장애등급과 복지카드를 발급받으실 수 있을겁니다. 사시는 지역에 따라 시각장애아동을 가르치는 학교도 있으니 찾아가 보시구요. 미안하다, 꼬마야."
  그랬다. 당시의 내겐 장애라는 말은 아무런 무게를 갖지 않았었다. 단지 학교에 나갈 수 없다는 것과 친구들을 만날 수 없다는 것. 즐겨하던 게임을 할 수 없게 되리라는 막연한 불안감. 그게 내가 느낄 수 있는 것들의 전부였다. 한 가지 더 있다면 수술로 들어갔던 돈과 부모님의 고생 그리고 시간. 무엇보다 나로 인해 부모님이 울고 계시다는 생각이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던 것 같다. 정확히 무엇이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앞을 볼 수 없게 된 것이 나의 잘못인 것처럼 나는 부모님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차라리 매라도 맞았으면 속이 후련했을지도 모르겠다. 부모님은 항상 나를 걱정했고 나를 다독였다. 어머니는 애써 내 앞에서 웃는 것 같았지만 새벽에 나는 어머니가 울음으로 기도하는 소리를 자주 듣곤 했다. 내 눈에 손을 얹고 본인의 눈이라도 주고 싶다고 기도하던 그 마음에 감사하면서도 과분하고 죄스러워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장애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도리어 장애라는 개념은 내가 점점 자라나면서 교육받았던 것 같다. 나는 비장애인과 무엇이 다른지 어떠한 것을 할 수 없는지 끊임없이 교육받고 받아들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장애라는 말이 애초에 없었더라면 나는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은 과연 장애와 비장애를 지금처럼 구분하고 있을까? 흔히들 생각하는대로 말한다고 그것이 마치 하나의 진리라도 되는 양 믿고 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충분히 성립한다. 생각은 언어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될 수 없는 것들은 사고로 이어질 수 없다. 장애도 분명 그러할텐데 단어의 탄생이 한스럽기만 하다.

  2
  "아나... 어제 버스타려고 옆에 사람인 줄 알고 버스 번호 좀 알려달라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답이 없는거야. 1~2분 정도 기다리다가 이상하다 싶어서 지팡이로 쳐봤는데 기둥인거 있지? 나 완전 바보같았어. 하하하!"
  "진짜? 하하하하! 대박!! 나도 그거랑 비슷하게 실수한 적 있어."
  딩동댕동 하는 종소리와 함께 교실은 학생들의 웃음소리로 가득찬다. 교실도 웃음소리로 배가 부른 듯 창가로 따사로운 햇살을 맞이하며 창문 틈새의 산들바람과 노닐고 있다. 바람결에 안겨 온 꽃향기가 땅의 내음을 가득 머금고 싱그럽게 물결치는 것을 보면 계절은 완연한 봄으로 향하고 있는 듯하다.
  학생들은 교실로는 도저히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인지 복도로 운동장으로 발걸음과 웃음을 이끌고 퍼져나간다. 퍼져나가는 모양새가 꼭 밥이 다 지어진 밥솥에서 튀어나가는 쌀 알갱이의 향기같다.
  넓다란 운동장에서는 술래잡기가 한창이다. 더러 눈으로 세계를 감각하는 학생도 있는지 두 명씩 짝을 지어 맴돌고 있다. 아마 한 명은 보이고 한 명은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그마저도 완전히 보이는 것은 아닌지 매달린 학생을 데리고 달리는 폼이 영 미덥지가 않다.
  그러나 언제나 휴식은 짧고 빠를 뿐이다.
  딩동댕동!!
  교정을 울리는 종소리에 학생들은 아쉬운 걸음으로 교실을 향해 터벅터벅 걷기 시작한다. 화단에 심긴 꽃들은 학생들의 그러한 모습이 우스운지 바람결에 몸과 향을 맡긴 채로 춤사위를 벌이고 있다. 그 사이를 분주하게 오가는 나비와 벌들도 종소리에 맞춰 날개를 들썩거리고 있다. 어찌나 빠르게 비벼대는지 보지 않아도 목적지가 훤히 읽힌다.
  "35쪽까지 했었지? 그 다음부터 진영이가 읽어봐."
  "네. 엄.... 잠시만요..."
  "미리 안찾아놓고 짜슥이..."
  "헤헤!! 읽을게요. 붉은 산수유...."
  선생님에게 지목당한 학생은 능청스럽게 글을 읽어가는가 싶더니 옆에 있던 친구의 갑작스런 질문에 읽기를 멈춘다.
  "샘!! 저 질문이 있는데요. 빨간색이 어떤 색이에요?"
  "음.... 빨간색은 어떤 색이냐면... 글쎄? 이걸 시각적이지 않은걸로 어떻게 표현할까? 표현할 수 있는 사람?"
  태어날 때부터 눈으로 세계를 접하지 않았던 모양인지 색에 대한 질문으로 교실은 왁자한 웃음바다가 되고 만다. 안 그래도 그게 본인도 궁금했다는 말도 그러고보니 시각적이지 않은 걸로 색을 표현하기가 정말 힘들다는 말도 간간히 섞여 있다.
  "선생님! 제가 설명해볼게요. 우리 머리 맞으면 살살 맞을 때는 노랗고 좀 더 세게 맞으면 빨갛고 정신 잃을 정도면 까맣거나 하얗게 되잖아요."
  그 말에 기대감에 차 있던 선생님은 목소리를 와락 구기고 만다.
  "에라이... 뭘 이야기하나 했더니. 확 벌서게 할까보다."
  불쑥 꾸짖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재미있는 설명이라고 선생님도 느꼈던지 말투에는 익살이 묻어난다.
  그렇게 왁자한 웃음과 낭낭한 학생들 그리고 이들을 가르치는 교사의 목소리로 공백은 채워지고 시간은 흐르고 있다.
 
  내게 중고등학교 생활은 꽤나 즐거웠다. 같은 시각장애 학생들과 있어서인지 전혀 어색하지 않았고 나를 이해하는 사람들 곁에 있다는 것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었다.
  학교 회장도 하고 설레이는 연애도 하고 골볼(시각장애인 스포츠)선수로도 활동했다. 공부도 하고 악기도 배우며 정말 후회없이 지낸 느낌이다. 때로는 친구들과 우루루 모여 맛있는 음식을 시켜먹기도 하고 시험이 마치는 날이면 노래방에 가서 신나게 놀고 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순수하다 싶지만 그때만 해도 나는 학교를 벗어나 노래방에서 몇시간이고 있는 것이 아주 큰 자유라고 생각했었다. 학생 회장을 맡으면서는 국토순례와 스키캠프와 같은 프로그램도 진행해보고 가요제도 친구들과 기획해서 열어보았다. 내게는 하나하나가 정말이지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억만금을 주고 싶은 심정이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아마 내가 가장 편안하게 모든 가능성을 보일 수 있던 곳이 아니었나 싶다. 같은 입장을 공유하고 같은 시선으로 세상을 감각하다보니 그들은 내게 시각장애냐고 묻지 않았고 나 역시 같은 이유로 그들에게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시각장애라는 정체성에 나를 가둬 둘 필요가 없었던 듯하다. 대학교를 가며 조금 더 정확히는 비장애인 친구들을 만나면서는 항상 나를 소개할 때 다른 말 대신 "제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라고 이야기해야만 했고 때에 따라서는 그들이 내게 요구하는 시각장애인의 정의를 그대로 답습해야 했다.
  물론 시간이 흘러 서로가 편해지고 익숙해지면 그들도 더 이상 내게 시각장애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복받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내 장애를 받아들이기 싫은 사람과의 관계 즉, 일반적으로 사회에서 장애는 큰 약점으로 비춰지는 탓에 가식적인 관계는 생겨날 여지가 없지 않을까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주위 사람들을 대할 때 진심을 다 하게 된다.

  3
  "진영아. 앞에 계단 있어."
  처음 대학교에 들어온 양 어색하기 짝이 없는 학생들이 쭈뼛쭈뼛 길을 걷고 있다. 딱 보아도 나는 선배다라고 얼굴에 써 붙인 듯한 학생 몇몇이 이들을 이끌고 식당가를 향한다. 그 가운데서도 유난히 눈길을 끄는 행렬이 있다면 사방을 둘러싼 친구들에게 붙들려 가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술 취한 것도 아닌데 꼭 모양새가 부축을 받는 듯도 하고 체포를 당해 끌려가는 것도 같다. 그래도 친구들은 가운데에 놓인 이를 매우 신경쓰는지 한 걸음 한 걸음이 조심스럽다.
  계단을 말해주는가 하면 어느쪽으로 갈 것이라고 방향을 일러주기도 한다. 그 중에는 주변의 풍경을 그리듯 자세하게 설명해 주는 학생도 있다. 사방의 소리가 친구들의 맞잡은 손이 따뜻하게 조금은 낯설게 가운데에 있는 이를 감싼다.
  ‘이렇게까지 안해도 되는데....’라고 생각은 하지만 무어라 설명하기도 전에
  "우리가 도와줄게! 같이 가자!"라며 후다닥 붙어서는 친구들 덕에 말도 하지 못한다. 그렇다. 가운데 있는 이는 눈으로 세계를 인식하지 않고 귀로 코로 손으로 그리고 혀로 세계와 대화한다. 그의 고개가 돌아갈 때마다 사방에서 왁자하게 떠드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워낙 들떠 있는 탓에 다른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그의 머릿속은 얼른 친구들의 목소리를 외워야겠다는 결심으로 한가득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13학번 김진영이구요. 제가 시각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먼저 인사를 못드리거나 목소리를 외우는 데에 좀 시간이 걸리니까 먼저 누구인지 밝혀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대학교에 와서 가장 많이 한 말이 이것이고
  "내가 어떻게 도와주면 될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이것이다.
  장애와 비장애. 극명히 나뉘어진 단어처럼. 서로에게 부족했던 물음들이 나와 그들의 첫만남에서 비로소 해소된다. 응당 막힌 것들은 통해야 하고 통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를 강하게 잡아야 한다.
  문득 묘한 생각에 잠긴다.
  나는 중고등학교를 특수학교로 다녀서인지 그곳에서는 정말이지 내가 펼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다 시험해 보았던 것 같다. 그 차이를 잘 몰랐는데 대학교에 와보니 두 세계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특수학교에서는 모두가 장애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우리는 서로의 장애에 대해 지극히도 무관심했다. 심지어 10년이 넘도록 친구로 지내 온 사이에서도 서로의 병명을 모르고 있을 만큼 장애는 서로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같은 공간에서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이해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중요할 뿐. 그 외의 것들은 쓸데없는 것에 다름 아니었다.
  내 수많은 정체성 중에서 장애는 그들에게 절대 특별하지 않았다. 오히려 평범하다 못해 굴러다니는 돌멩이만도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대학교에 오자 상황은 달라졌다. 나의 많은 정체성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장애였고 친구나 선배들은 나의 이러한 정체성을 알고 싶어 했다. 아-예 내게 무관심한 것보다는 분명 나았으나 그러한 관심은 나를 시각장애에 머무르게 했다. 그들은 나를 하나의 특징으로 간명하게 파악하고 싶어했고 그에 맞게 나는 행동하고 생각해야만 할 것 같아 항상 조심스러웠다.
  막상 친해진 사이에서는 더 이상 장애 이야기가 오고 가지 않는다. 아니 장애/비장애가 중요치 않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심지어 친해진 후에는 이따금씩 나의 장애에 대해 잊어버리는 친구들도 있다. 길을 가다가 내게 길을 묻는다던지 간판의 색을 묻는다던지 나를 안내해줘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자기들끼리 훌쩍 가게 문을 나섰다가 돌아온다던지 하는 예를 들면 될 듯하다. 그러나 그들은 미안해하지 않고 웃음을 짓고 나 역시 웃음으로 그들을 맞이한다.
  어찌보면 내 가장 약한 부분을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일은 결코 달가운 것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퍽이나 어색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방법은 소통밖에 없다. 나는 여지껏 장애가 나의 노력으로만 완화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비장애인과의 관계에서 나는 언제나 소수였으므로 내가 노력하고 내가 맞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억울하기까지 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안다. 그들이 나를 받아들이기까지 내가 그들을 받아들이기까지 서로의 대화는 얼마나 열띠게 온도를 더해갔으며 맞잡은 손은 얼마나 힘을 더해 갔는지를. 서로가 서로를 받아들이고 드러내야만 장애가 가장 큰 정체성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요즘 내 장애와 관련해서 슬픔이라는 감정을 떠올려보고는 한다. 내 장애가 슬프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슬픔이 항상 사라져야 할 것으로 여겨지듯, 장애도 그냥 그렇게 보여지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사실은 슬픔이 있기 때문에 그와 이웃한 기쁨도 느낄 수 있는 것일텐데 우리는 슬픔의 탄생을 기뻐하기는커녕 목놓아 위로하기만 한다. 슬픔도 기쁨처럼 끌어안고 가야 하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장애도.
  극복이거나 없어져야 할 대상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고 나를 구성하는 하나의 특징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것일까?
  내가 장애라는 정체성에 머무를 필요도 없지만 장애를 애써 부정함으로써 장애인이 아닌 것처럼 행동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불편한 것은 물론 많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그렇지만 나는 나와 친해진 그리고 나를 아끼는 사람들이 괜찮다고 긍정해 준 장애를 버려두고 갈 생각은 전혀 없다. 그들이 받아들여줬다면 나 역시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나는 현재를 살고 미래도 살 것이다.
  아, 나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우리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나와 맞잡은 소중한 사람들의 손을 놓지 않았으니까. 그들이 나의 손을 꼭 쥐고 있는 것처럼.

  세계는 시각적인 표현들로 넘쳐난다. 맛보다, 해보다, 꿈을 그리다 등. 서로에게 보고 싶다고는 하지만 만나고 싶다거나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때로는 상대의 손을 잡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목소리를 듣고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해질 수 있다.
  이것이 내가 그리고 우리가 사는 방식이다. ​ 

     160. [2015] 김종순-나의 친구 자원봉사 고맙다
     158. [2015] 김태욱-주님의 은총입어 거듭난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