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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무의 시 산책
 
독감 프린트   
희망방송  Email [2016-10-04 11:45:51]  HIT : 78  

 

 

한 보름 동안 지독하게 독감을 앓았다. 독감도 이제 예전 같지가 않다.

 

한 사흘 앓고 나면 똑 떨어지던 것이 요사이는 어찌된 일인지 보름을 앓아도 여진이 계속 남아있는 것이다.

 

병도 속악한 인간을 닮아가는 것인지 갈수록 그 성정이 극악해지고 있다. 왜 안 그렇겠는가.

 

그들도 생명체인 이상 열악한 생태 환경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저마다의 타고난 생존 능력을 키워나갈수 밖에 없을 것 아닌가

 

 

병도 이제는 다른 생물체와 마찬가지로 살아남기 위해

 

우성인자에 의해 열성인자는 자연 도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를 괴롭히는 현존의 인플루엔자는 인류상 최상의 우성 감기인자인 셈인 것이다.

 

이번의 독감은 어찌나 힘이 센지 웬만한 장정들도 한번 걸려들면 그 앞에서 곰짝 없이 백기를 들고

 

오금을 펼 수 없을 정도라 한다. 백신이 없는, 말 그대로 슈퍼 독감이 도래한 것이다.

 

 

필자도 이번에 제대로 걸려들었다. 된통 앓았다.

 

수천수만의 사나운 짐승의 이빨 혹은 한참 벼른 바늘이 되어

 

바이러스는 물 젖은 휴지처럼 형편없이구겨진 육신을 함부로 물어뜯고 찌르고 할퀴어댔다.

 

한 보름 그렇게 앓고 나니, 목소리에 과장을 실어 말하면 거의 탈진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밥맛을 잃고 그야말로 물과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만으로 연명하는 나날은 곤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걸려오는 휴대폰 전화도 귀찮아 전원을 끄고 잠시 동안 세상과 스스로 소통을 단절한 채 보냈다.

 

 

아내와 아이가 학교에 간 후의 텅빈 아파트에서 고무처럼 질긴 시간을 씹으며

 

나는 무료와 권태와 고독을 가까스로 이겨내고 있었다.

 

엄살 같지만 아픔을 견디는 일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이 실존적 개체요, 단독자라는 것을 아픔만큼 절실히 알려주는 표지도 드물 것이다.

 

본의 아니게 유폐와 칩거를 자청한 꼴이니 새삼 누구를 원망하랴.

 

 

독거獨居란 세상 소문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뜻한다. 당해 본자는 알것이다.

 

허섭스레기만도 못한 세상의 잡문으로부터 격리되는 일이 결코 생각처럼 만만치 않다는 것을.

 

휴대폰을 꺼 놓는 순간 나는 섬이 된다.

 

현대 기술문명이란 이처럼 가혹한 것인가.

 

문명의 이기利器가 아니면 우리는 당장의 이웃과 친구로부터 소외와 타자他者를 겪게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야말로 기술문명 시대를 사는 현대인의 잔인한 운명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나 독감이 내게 마냥 생활의 불편함을 안겨다 준 것은 아니었다.

 

독감도 병은 병이라서 크게 앓는 동안 나는 나에게 다녀간 소중한 인연들을 떠올렸고,

 

또 그간 생활을 핑계로 소홀했던 약속들을 떠올렸다.

 

그 많은 생의 부채감들을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잊고 살아왔던 것이다.

 

 

한 보름 독감을 앓고 나서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문을 나섰다.

 

앓는 내내 눈은 내려서 세상은 군데군데 작은 도화지를 만들어 놓고 있었다.

 

앓고 난 내 몸이 수척하니 세상도 덩달아 수척해 보였다.

 

사람들의 표정도 조금은 넉넉하고 풋풋하고 유순해 보였다.

 

 

보름을 앓는 동안 내 소원은 오직 한 가지뿐이었다.

 

얼른 이 지긋지긋한 독감 바이러스를 털어내고 일어나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 한 그릇을 배부르게 먹는 것였다.

 

 

나를 괴롭히던 모든 욕망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앓는 동안 그것들- 시기, 질투, 경쟁, 승리,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 따위- 은 얼마나 사소하고 비루한 것인지

 

독감은 나를 나름대로 순결한 인간으로 되돌려놓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저기 펼쳐진 작은 도화지에 아직 때묻지 않은 상념들을 마음의 펜으로 적으며

 

나는 재작년 백두산 가는 길에 만났던 가는 허리의 자작나무들을 떠올렸다.

 

된바람 속에서도 의연한 모습과 귀족의 자태를 오롯이 뽐내고 있던 자작나무의 대열이 자꾸만 눈에 밟혀 오는 것이었다.

 

 

세속잡사를 떨구어 낸 수도승의 모습이 그와 같았을가.

 

또 다르게 보면, 그들처럼 관능적인 나무들도 없었다.

 

맨 몸으로 강파른 추위에 맞서있던 모습에서 나는 스무살의 강건한 육체를 떠올리고 있었다.

 

왜 하필 나는 독감을 앓는 동안 그리고 다 앓고 나서도 뜬금없이 그 나무들만을 거듭 떠올리고 있었던 것일까.

 

 

흙바람을 이겨내고 있던 그 나무들의 수성에서 나는 욕망을 비워낸

 

한없이 가벼워진 육체와 영혼의 존재를 보았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감기가 질병만이 아닌 생활의 겸손한 지혜를 가져다 준 것처럼, 독감을 앓고 나니

 

모든 것에 전에 없던 여유가 생기고 너그러워졌다.

 

내 몸을 숙주 삼아 유숙하던 그 심술 사납던 바이러스 군에게도 나는 증오 대신 이해와 용서의 마음이 생기게 되었다.

 

참으로 알 수 없는 변덕스런 마음이라니!

 

그들은 내내 생에 신중할 것과 겸허할 것을 주문해 오지 않았던가.

 

 

나는 지금보다 훨씬 더 단순하게 살아가야 하리라.

 

휴대폰을 꺼내 전원을 켠다. 오래 전 사소한 사소한 오해로 멀어진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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