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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선수 신영록, 다시 일어나 우리 앞에 섰다 프린트   
신현주 작가(고문)  Email [2017-09-03 17:45:29]  HIT : 26  

 

1퍼센트 확률이란 백 번 가운데 한 번 성공한다는 힘든 선택. 누구나 그건 불가능이라고 말하겠지만 그럼에도 단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지 않는가. 전 축구 국가대표 신영록(30) 선수가 2퍼센트의 가능성을 뚫고 일어났다. 부정맥에 의한 심장마비로 그라운드에서 쓰러진 지 46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고, 그리고 지금 그 기적의 사나이6년째 재활의 땀을 쉼없이 흘리며 두 발로 일어섰다.

지난 7, 몸의 근력과 균형을 잡아 주는 특수재활장비 바이오덱스에 조심스레 오른 그가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텼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꿋꿋하게 정면을 보며 자세를 잡았다.

잘했어. 영록아, 많이 좋아졌다.’

재활을 돕고 있는 서울 솔병원 나영무 원장이 좋아하자 환하게 웃었다. 비록 그라운드는 아니었지만 모처럼 그의 얼굴에서 웃음꽃이 피어오르며 주위사람들까지 흐뭇하게 했다. 그는 자리를 옮겨 혼자 힘으로 천천히 사이클 페달을 밟았다. 아버지(신덕현)발과 페달을 끈으로 묶지 않고 혼자 돌리는 건 처음 봤다.’고 대견해 했다.

어느덧 59개월이라는 긴 시간이 흘렀다. 플레이가 저돌적이면서도 놀라운 득점 감각을 보유했던 그는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프리미어리그 스타 드록바와 닮았다고 하여 영록바라는 애칭으로 불렸다. 182센티미터 키에 지칠 줄 모르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지닌 그는 흔히 말하는 엘리트 코스를 차곡차곡 밟았다. 어린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청소년대표팀을 거쳐 올림픽 대표선수에 뽑혔다. 2006년 아시아청소년축구대회에서는 최우수선수상을 받았고, 한국의 차세대 간판골잡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

이후 터키 부르사스포르, 러시아의 FC 톰 톰스크에서 활약했다. 그리고 20107월 수원 삼성 유니폼을 입고 K리그 무대를 누볐고, 2011년에는 제주 유나이티드로 옮겼다. 그렇게 촉망받던 그가 201158일 서귀포 홈구장에서 경기 도중 심장마비로 쓰러졌던 것.

그후 4년 뒤인 2015919일 수원 삼성과 FC서울의 슈퍼매치가 열린 수원월드컵경기장. 불굴의 의지로 그라운드 복귀를 꿈꾸고 있는 그가 휠체어를 탄 채 시축자로 나섰다. 아직까지 부축이 필요한 몸상태였지만 천천히 하프라인에 서서 오른발로 공을 찼다.

지난 730, 그가 인천 SK행복드림구장 마운드에 올랐다. 인천 SK 대 부산 롯데 프로야구 경기에 시구를 맡은 것이다. 한결 나아진 모습으로 힘차게 볼을 던지자 관중들은 이 기적의 사나이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그는 현재 매주 두 차례 연세대의료원 재활병원, 한 번은 솔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인지 기능, 신체 기능이 하루가 다르게 향상되고, 정상 식사가 가능할 정도로 많이 회복되고 있다.

선택이 바뀌면 인생이 바뀐다고 했다. 1퍼센트의 가능성만 있더라도 그것은 희망이고 승리다. 이제 필요한 것은 우리들의 관심이다. 식지 않는 관심과 응원이 꼭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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