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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에 사는 이유 - 시48편을 묵상하며 프린트   
희망방송  Email [2016-05-03 14:20:41]  HIT : 241  

오래전에 '아름다운 서울에서~ 서울에서 살렵니다~'를 열심히 따라 부르던 때가 있었다.

‘이 도시에 자비를 베푸소서!’

막상 살아보니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고, '여기서 왜 살지?' 싶을 때도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 시 48편은 '예루살렘 찬가'라고 할 수 있다.

"너희는 시온 성을 돌면서, 그 성을 둘러보고, 그 망대를 세어 보아라.

너희는 그 성벽을 자세히 보고, 그 궁궐을 찾아가 살펴보고, 그 영광을 전해 주어라.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우리의 하나님이시니, 영원토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신다' 하여라."(12-14)

 
고라 자손들이 노래하는 것은 '수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이다.

그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민족은 누구나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이라고 믿었고,

거기서 위대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날을 기다렸다.(1,10)

그들은 예루살렘 곳곳에 있는 하나님의 구원약속의 흔적을 기억했다.

앞으로 경험할 하나님의 구원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찬가를 부르는 이유이며 그 성에서 살고 싶은 이유였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서울이라는 이 도시에서 사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한 때는 이 도시가 급속한 개발과 성장의 대명사였고 – ‘한강의 기적’처럼 –

그로 인한 자부심이 도시민들의 가슴을 데웠었다.

 

그러나 지금 이 도시는 늙어가고 있다. 그리고 도시와 함께 사람도 늙어가고.. 교회도 늙고 있다.

급성장은 추억이 되었고.. 저성장 시대와 함께 불안과 조급증이 광장과 교회를 뒤덮고 있다. 


그러나.. 우린 지금 가야할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급성장은 언제까지나 자랑할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무너져야만 이로운 맘몬(돈의 우상)이고 몰렉(폭력의 우상)이고 바알(성의 우상)이었다.

이제 이 도시는 우상들의 거짓 약속에 미혹되었던 ‘바벨의 미몽(迷夢)’에서 깨어나야 한다.

더불어, 성장으로 이름을 내려하는 조급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주는 경고와 교훈을 결코 무시하지 말아야 한다. 


“현대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병은 조급병이다. 사람들은 서서히 성장하는 것보다 급성장을 좋아한다.

급성장을 자랑거리로 삼는다.

 

​어떤 버섯은 6시간이면 자란다.

호박은 6개월이면 자란다.

그러나 참나무는 6년이 걸리고,

건실한 참나무의 자태를 드러내려면 100년이 결린다.” (강준민, <뿌리깊은 영성>에서)

 

 

‘이름을 내기위해’ 바벨에 탑을 쌓던 사람들의 노력에 비하면,

하나님이 믿음의 사람을 세우시려고 준비하신 세월은 훨씬 더 지난하고 거룩한 노고의 시간이었다.

건실한 참나무를 가꾸는 영성과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결국 바벨은 무너졌고, 셋의 계보를 따라 태어난 아브라함으로부터 위대한 구속사는 시작되었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런 한 사람과 그런 한 교회를 준비하고 계시지 않을까.

아니, 하나님은 반드시 그리하고 계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토록 우리의 하나님이시며, 영원토록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기” 때문이다.(14) 


그러니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무너진 바벨탑을 아쉬워하지 말자. 무너질 것이었다고 해석하는 게 좋다.

대신 새로운 구속의 은총의 역사를 예비하신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분께 기대하자. 가을이 깊어간다.

오직 주님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바라는 희망도 깊어가길 소망한다.

그리고 이 소망이 이 도시에 사는 이유라면 어떨까... 


 

‘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 도시에 자비를 베푸소서!’​

     
     40. 반성 그리고 회개 - 시 47편과 함께